[권노갑위원 퇴진]여권내 권력 대이동 신호탄

  • 입력 2000년 12월 17일 23시 31분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그림자’ ‘영원한 비서실장’ 등으로 불리며 사실상 여권 내 ‘2인자’의 역할을 해온 권노갑(權魯甲)최고위원이 17일 결국 최고위원직 사퇴의사를 밝혔다.

권최고위원의 최고위원직 사퇴는 2년여가 남은 김대통령의 임기 중 정치일선에 복귀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연말 당 쇄신은 물론 향후 여권 내 역학관계 변화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당 쇄신〓권최고위원의 사퇴는 동교동계 주류측 인사들이 당의 전면에서 퇴진하고, 상대적으로 소외돼온 동교동계 비주류 또는 비동교동계 인사들이 전면에 나설 것임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사실상 여권 내 인적교체, 또는 세대교체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관련, 당내 소장파의원들은 그동안 97년 대선승리를 이끌었던 ‘드림팀’의 재구성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해 왔다. 계파를 떠난 능력 위주의 인선을 요구한 것이었다.

따라서 김대통령이 구상하는 당 쇄신의 방향도 단순히 몇몇 인사를 골라내는 선을 넘어, 당내 ‘권력이동’의 차원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권최고위원이 스스로 사퇴했다는 점도 당정쇄신 폭을 가늠할 수 있는 풍향계다. 올해 ‘4·13’총선 때도 권최고위원은 스스로 출마를 포기, ‘희생양’을 자임함으로써 ‘물갈이’ 대상 의원들의 자연스러운 출마포기를 유도했었다.

김대통령으로서도 권최고위원의 사퇴로 부담을 덜고, 자신의 구상대로 새로운 판을 짤 수 있는 여지가 넓어진 측면이 있다.

▽당내 역학관계 변화〓우선 동교동계 비주류에 속하는 한화갑(韓和甲)최고위원과 문희상(文喜相) 배기선(裵基善) 설훈(薛勳)의원 등의 입지가 보다 강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민주당의 차기대선후보 선출 구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특히 이인제(李仁濟)최고위원의 입지가 보다 불안해졌다. 권최고위원은 그동안 이최고위원의 ‘후견인’으로서 활동을 해왔고, ‘8·30’전당대회 때도 당내 뿌리가 약한 이최고위원을 막후에서 지원함으로써 타 후보들의 강한 반발에 부닥쳤었다.

정동영(鄭東泳)최고위원이 ‘권노갑 퇴진론’을 제기한 이후, 이최고위원이 공개적으로 권최고위원을 두둔하고 나선 것도 그 때문이었다. 든든한 울타리를 잃은 이최고위원의 향후 행보가 관심사다.

한편 ‘막후 조정자’ 역할을 했던 권최고위원의 사퇴는 당에 권력공백을 초래함으로써 최고위원들을 중심으로 한 ‘계보화’와 ‘줄서기’가 촉발될 가능성도 높아졌다. 청와대는 최고위원들의 지나친 경쟁구도와 계보화를 막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윤영찬기자>yyc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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