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최고위원이 측근에게 “내가 대통령을 위해 이런 것(사퇴) 해야지”라며 사퇴의사를 밝힌 것은 16일 밤이었다.
그러나 권최고위원에게 사퇴하는 게 좋겠다는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의중이 전달된 것은 정동영(鄭東泳)최고위원이 청와대 최고위원회의(2일)에서 ‘권노갑 퇴진론’을 제기한 사실이 언론에 보도(5일)된 직후인 6일경이었다.
‘전령’은 박지원(朴智元)전 문화관광부장관 등이었다. 권최고위원은 김대통령의 뜻을 흔쾌히 받아들이고, 7일 김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노벨상 시상식 동행 포기 의사를 밝혔다. 김대통령이 출국하기 전날이었다. 당시 김대통령은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고 위로했다. 권최고위원은 이 때 다시 김대통령의 뜻을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권최고위원은 이어 10일밤 한화갑(韓和甲)최고위원과 김사무총장 등 동교동계 의원 10명과 ‘눈물의 회동’을 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우리 자리에 연연하지 말자”며 ‘초심(初心)’을 강조했다. 권최고위원이 남궁진(南宮鎭)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을 만나 사퇴 결심을 통보한 것은 16일이었다. 측근들은 그동안 “최고위원직 사퇴는 아직 이르다”며 반대했다. 이대로 물러날 수는 없으며 퇴진을 주장하거나 동조하는 사람들과 선을 그어야 한다는 강경론자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가족들은 정계은퇴를 권유했다. 정치에는 밝은 측면과 어두운 측면이 공존하는데, 야당 때부터 어두운 측면을 맡아 책임을 다해 온 권최고위원이 이제는 완전히 물러났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권최고위원의 부인은 “우리가 어떻게 살아왔는데…”라고 하면서도 사퇴결심을 담담히 받아들였다는 후문이다. 한 측근은 권최고위원의 사퇴와 관련, “정계은퇴는 아니나 정치적 역할은 하지 않을 것”이라며 “성명서에 쓴 ‘순명(順命)’이라는 말은 수녀들 사이에서 많이 쓰인다”고 말했다.
<김창혁·윤영찬기자>ch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