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민주당은 내년에는 경기위축으로 민간투자가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정부재정지출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내년 경제성장률이 5∼6%로 둔화돼 세수(稅收)가 2조원 정도 줄어들 것인 만큼 올해 수준으로 동결하는 긴축예산편성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정부재정을 늘릴 게 아니라 국민의 세부담을 낮춰서 민간의 소비를 촉진하고 기업의 투자를 활성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정부예산안에서 최소한 6조원은 순삭감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이에 대해 민주당측 예결위 간사인 정세균(丁世均)의원은 “과거의 전례를 보면 4500억원 이상을 삭감한 적이 없다”며 “6조원을 깎자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주장”이라고 반박했다. 또 “한나라당이 세부적인 삭감내용은 내놓지 않으면서 정치공세만 되풀이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하지만 한나라당은 단순한 정치논리가 아니라고 맞선다. 20일 의원총회에서 이회창(李會昌)총재는 “야당이니까 한번 깎아보자고 하는 얘기가 아니다. 이렇게 가면 나라가 파산한다. 2002년, 2003년이 되면 갚아야 할 빚만 40조∼60조원이 돌아오는데 정부의 예산안은 무책임한 것이다”고 거듭 강조했다.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민주당은 정부 원안통과를 기본으로 하되, 농어가부채경감법 제정에 따른 6600억원과 구조조정에 따른 실업대책비 2000억원을 비롯해 중소기업지원, 사회간접자본(SOC)투자 확대 등에 예산을 늘릴 것을 요구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경상비 등 경직성경비에서 1조원을, 예비비에서 1조7000억원을, 특별회계에서 1조8000억원을 각각 줄이자고 한다. 이밖에 국가정보원 등의 특수활동비에서 2000억원, 남북협력기금에서 4000억원 등을 삭감할 것으로 요구하고 있다.
이 때문에 새해 예산안은 본회의가 예정돼 있는 21일에도 처리 여부가 여전히 불투명하다.
민주당은 21일에는 반드시 처리하겠다는 방침이지만 지도부가 사실상 공백상태에 빠져있고, 한나라당은 전례없는 대규모 삭감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는 한 타결은 어렵다는 주장에서 한 치도 물러서지 않고 있다.
<김정훈기자>jngh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