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총무간 합의처리시한인 21일까지 (우리 당이) 한 치의 양보 없는 안을 내놓고 있으면 이게 협상을 하자는 거냐”는 게 박의원의 얘기다. 처음부터 지나치게 무리한 주장을 펴는 바람에 협상이 지연됐고, 이제 와서는 더 이상 후퇴할 수도 없는 진퇴양난의 지경에 빠졌다는 지적이었다.
한나라당은 본격적인 예산심의에 들어가기 전인 이달 초 정부 예산안에서 10%(10조원 규모)를 삭감해 올해 수준으로 동결한다는 대원칙을 천명했고, 본격협상에 들어간 20일 민주당 쪽에 6조원을 순삭감하자는 최초 협상안을 제안했다.
이날 의원총회에서 이회창(李會昌)총재는 “야당이니까 한 번 해본 주장이 아니며, 자칫하면 정부가 파산할 우려까지 있다”며 대폭 삭감안에서 물러설 수 없다는 입장을 거듭 강조했다. 그러나 당내 상당수 의원들은 현실적으로 무리한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그 때문에 예산안 처리가 내년으로 넘어갈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당장 20일 밤 김기배(金杞培)사무총장과 정창화(鄭昌和)원내총무가 이총재와 저녁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예산처리가 너무 지연돼서는 안된다. 그러면 여론이 악화될 수 있다”며 이총재를 강하게 설득했다. 그리고 한나라당은 다음날인 21일 오전 3조원 순삭감안으로 한발 물러섰다.
3조원 순삭감안은 한나라당측 예결위 간사인 이한구(李漢久)의원이 미리 마련해놓았던 2차협상안. 그러나 이와 별도로 이강두(李康斗)의원을 중심으로 1조원 삭감안이 준비되고 있었고, 21일 오후에는 정창화총무가 장재식(張在植)예결위원장에게 “최후통첩”이라며 1조원 순삭감안을 제시했다.
이 과정에서 이한구의원은 완전히 배제돼 ‘왕따’당했다. 하루만에 순삭감 주장 규모가 6조원→3조원→1조원으로 급전직하하는 모습을 보인 셈이다. 정총무는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1조원도 못깎는다”고 설명했지만, “국가예산 삭감이 무슨 애들 장난이냐”는 비판이 적지 않다.
<김정훈기자>jngh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