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트 오른 '깃털 정치인' 불러봤자…" 검찰 고민

  • 입력 2001년 1월 15일 18시 27분


96년 총선 전 강삼재(姜三載)의원에게서 안기부 돈을 전달받은 정치인의 소환은 두 가지 관점에서 이 사건 수사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우선 정치적인 측면. 공세의 입장에 선 민주당과 수세의 입장에 놓인 한나라당은 각각 정치인 소환을 적극 유도하고 또 막아야 할 첨예한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다.

사건에 적극 개입된 정치인들은 대부분 한나라당 소속이어서 이들이 줄줄이 소환되는 장면은 현 야당의 이미지에 큰 영향을 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또 정치인 조사 과정에서 김영삼(金泳三)전 대통령과 현철(賢哲)씨 등을 소환해야 할 ‘이상징후’가 발견될 가능성도 높다.

진상규명 차원에서도 의미가 크다. 지금까지의 수사결과로 밝혀진 사건의 주범은 김기섭(金己燮)전 안기부 운영차장과 강의원.

그러나 검찰은 당시 신한국당 정치인 일부가 강의원과 함께 안기부 돈의 유입사실과 처리문제를 놓고 ‘협의’를 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특히 받은 돈을 다시 세탁했거나 숨겨놓고 쓰지 않은 정치인의 경우 ‘이상한 돈’임을 알았을 수도 있다.

검찰이 정치인 소환을 놓고 장시간 고민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같은 복잡한 상황 때문이다. 정치인의 대거 소환에 대해서는 이미 한나라당 소속 법사위 위원들이 15일 대검을 방문해 ‘경고’를 전한 마당이고 앞으로 계속 야당의 격렬한 저항을 불러올 것이 뻔하다.

계좌추적을 통해 명단이 드러난 사람과 드러나지 않은 사람과의 형평성도 문제다. 검찰은 계좌추적에서 쉽게 이름이 드러난 185명보다는 철저하게 돈 세탁을 해 아직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400여억원’의 주인들에게 범죄 혐의가 더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185명 중에는 내로라 하는 당시 중진들이 다수 빠졌다.

이런 상황에서 당이 주는 정치자금인줄 알고 돈을 받은 ‘깃털’ 정치인들을 소환해 망신을 주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비난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날 검찰 관계자는 “현재까지 정치인 소환에 대해 결정된 바 없다”며 “당직자 소환에도 비판적인 의견이 있어 정치인 소환은 신중하게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신석호기자>ky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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