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일 3차 적십자회담이 끝난 뒤 이병웅(李柄雄)남측수석대표는 이번 회담의 성과를 이렇게 평가했다.
그러나 북한의 신년공동사설과 ‘우리끼리 통일의 문을 여는 2001년 대회’,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의 ‘신사고’ 주창 및 개혁 개방을 시사한 중국 방문 등으로 회담에 대한 기대가 높았던 데 비하면 그 결실은 미흡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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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회담의 가장 큰 성과로 꼽히는 것은 서신교환 합의다. 분단 이래 처음으로 이산가족끼리 소식을 주고받게 돼 이산가족문제 해결에 한 걸음 더 다가섰다. 그러나 300명 규모로 시범적 사업에 그친 데다 가족사진 1, 2장을 동봉하는 수준이어서 아쉬움을 남겼다. 당초 남측은 약간의 물품을 전달할 수 있는 ‘소포’ 형태를 제의했다.
특히 이번 회담의 관건인 면회소 설치문제에는 북측이 종전 주장에서 한발도 물러서지 않는 등 이산가족문제 해결을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에 대단히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다. 남측은 임시면회소라면 판문점과 함께 금강산도 받아들일 수 있다는 유연한 입장을 보였지만 북측은 금강산 면회소 설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다만 남측은 이번 회담에서 북측이 보여준 부드러운 회담 분위기와 진행방식 등을 들며 향후 회담 전망을 어둡게 보지는 않고 있다. 특히 북측은 비전향장기수 추가송환을 주장했지만 이를 공동보도문에 포함시키지는 않았다.
한편 4차 적십자회담 장소와 관련해 남측은 금강산이 아닌 다른 곳을 제의했다. 남북이 장소를 바꿔가며 회담을 하는 상호주의에도 맞지 않는 데다 시설이 낡고 정전이 잦는 등 문제가 많았기 때문.
실제로 양측 대표들은 회담 내내 “손이 곱아서 회담을 못하겠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추위에 떨었고 30일엔 정전으로 ‘촛불 만찬’이 진행됐으며 31일 공동보도문 발표 때에는 형광등이 켜지지 않아 어둠 속에서 문건을 교환해야 했다.
<하태원기자>scooop@donga.com
▼공동보도문 요지▼
1. 3차 이산가족방문단을 서울과 평양에서 2월26일부터 28일까지 동시에 교환한다. 이를 위해 1월31일 교환한 방문후보자 명단에 대한 회보서는 2월15일 교환하며 최종 방문단 명단은 2월17일 교환한다.
2. 생사 주소가 확인된 300명을 대상으로 한 이산가족 서신교환은 3월15일 판문점 적십자연락사무소를 통해 실시한다. 서신은 편지로 하고 1, 2장의 가족사진을 함께 보낼 수 있다.
3. 2월중 실시키로 한 이산가족 생사 주소 확인대상자(각 100명) 명단은 2월9일 교환하며 결과 통보는 2월23일에 한다.
4. 쌍방은 이산가족 생사 주소확인 및 서신교환의 규모를 확대해 나가기로 하고, 구체적 사항은 4차 적십자회담에서 협의 확정키로 했다.
5. 쌍방은 이산가족면회소 설치 운영과 관련한 구체적 문제들을 4차 적십자회담에서 계속 협의 확정하기로 했다.
6. 4차 적십자회담은 4월3일부터 4월5일까지 하며 장소는 추후 협의 확정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