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집단체조 연출의 거장’인 김수조(金壽祖·70)씨가 3차 이산가족 방문단 후보에 포함됐다는 소식에 조카 김복겸(金福謙·53·자영업·서울 은평구 신사2동)씨는 31일 놀라움을 금치 못하며 아버지 수희(壽熙·75)씨의 생존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김씨는 “50년대말 작은 아버지 수조씨가 일본을 경유해 편지를 보냈을 때 아버지와 함께 작은 아버지도 월북한 사실을 처음 알았다”며 “그러나 경찰이 편지를 압수해 자세한 소식은 몰랐는데 살아계시다니 너무 기쁘다”고 말했다.김씨는 “아버지 5형제중 서울대 사범대를 졸업하고 KBS 어린이합창단 지휘자였던 아버지는 전쟁 직전 월북했고 수조씨 등 3형제는 전쟁도중 행방불명돼 막내 삼촌 수재씨만 남쪽에 있다 97년 돌아가셨다”며 “63년 사망한 할머니가 ‘모두 살아있을테니 절대 호적에서 지우지 말라’고 해 지금까지도 모두 살아계신 것으로 돼 있다”고 말했다. 한편 북한 피바다가극단의 총장인 김수조씨는 지난해 올브라이트 전 미국무장관이 방북했을 때 관람한 집단체조 ‘백전백승 조선노동당’을 직접 연출했으며 ‘공화국 영웅’과 ‘인민예술인’칭호를 받은 인물이다.
○…서울대 수학과 2학년 재학중이던 50년에 행방불명된 이봉태씨(71)가 북에서 자신을 찾는다는 소식을 접한 여동생 건숙(建淑·63·충북 충주시 연수동)씨는 31일 오후 둘째 동생 근태씨(59·경기 시흥시), 막내 동생 은태씨(55·부산 부산진구 범천동) 등과 통화하며 기쁨의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건숙씨는 “오빠는 전쟁이 터진 직후 학교에 간다고 나가서 소식이 없다가 인천상륙작전 며칠 뒤 인민군 복장으로 손에 총상을 입고 나타나 고려대 강당에 마련된 임시의무대에서 치료받던 중 소식이 끊겼다”며 “오빠가 행방불명되자 매일 술로 생활하시던 아버지는 결국 7년 뒤 화병으로 돌아가셨다”고 안타까워했다.
지난해 중국 단둥(丹東)시에서 사업하는 조선족으로부터 오빠 이씨가 신의주 간서대학의 교수로 있다는 소식을 처음 접했다는 건숙씨는 “오빠가 살아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는데 이제 적십자사를 통해 확인된 만큼 하루 빨리 만나고 싶다”고 말했다.
○…“마지막 소원이다. 동생을 꼭 보고 싶다.”
간암말기 증세로 7년째 투병중인 이정재씨(77·경기 고양시 덕양구 행신동)는 동생 영재씨(71)가 북한에 생존해 있다는 소식에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잇지 못했다.
한차례 수술을 받았던 정재씨는 지난해 암이 재발, “올 겨울을 넘기기 힘들다”는 판정을 받은 상태. 그러나 동생의 생존소식에 다시 삶의 의지를 불태우게 된 정재씨는 “얼마나 더 살지 모르지만 꼭 상봉기회가 주어져 동생을 만났으면 좋겠다”며 “무슨 수를 써서라도 동생을 보고싶다”고 힘주어 말했다.
정재씨는 또 “4남매 중 3남매가 남쪽에 살아 북에 홀로 있던 동생이 가장 외로웠을 것”이라며 “똑똑했던 동생이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는지, 제수와 조카들은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북의 동생 영재씨는 1·4후퇴 직전 성균관대 1학년 재학도중 의용군에 입대해 북으로 간 뒤 가족과 연락이 끊겼다.
동생 운재씨는 “돌아가신 부모님은 월북한 영재형님에 대해 말도 못하고 통한의 세월을 살아 왔다”며 “정재 형님을 모시고 북한이든 중국이든 세상 어디라도 찾아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종대·전승훈·이헌진기자>orionh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