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S 두번째 회고록 출간]"DJ비자금 수사 중단시켜…"

  • 입력 2001년 2월 14일 18시 57분


김영삼(金泳三) 전 대통령의 두번째 회고록 주요 내용이 출간을 하루 앞둔 14일 공개됐다. YS가 지난해 초부터 집필한 이번 회고록은 모두 900여쪽 분량으로 군 사조직 ‘하나회’ 청산과 금융실명제 전격 실시, 외국 정상들과의 회담 뒷얘기 등 재임 5년간의 국내외 상황에 얽힌 비화를 담고 있다.

다음은 상도동측이 공개한 회고록 주요 내용.

▽이회창(李會昌) 한나라당 총재〓(이 총재를) 감사원장에 발탁한 데 이어 총리와 당 대표는 물론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총재까지 시켜서 대선 후보가 되는 데 결정적 도움을 줬다. 대선 후보가 된 뒤에 나도 무척 기뻤다. 이 총재도 처음에는 감읍했다.

그런데 명예총재로 물러나 있던 내게 탈당을 요구했다. 선거운동 과정에서 ‘마스코트 폭행 사건’이 발생한 뒤 탈당해야 하겠다고 결심했다. (이 총재가) 총리 시절엔 내 권위에 도전해서 파면했다.

▽이인제(李仁濟) 민주당 최고위원〓(이 최고위원에게) 지난 대선 당시 ‘이번엔 출마하지 말고 5년간 잘 관리하면 다음에 (대선 후보가) 될 것이므로 탈당하지 말라’고 했다. 그도 처음에는 좋다고 하더니 태도를 바꿨다.

출마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연락을 하려고 했으나 통화가 잘 안됐다. 수소문해서 겨우 통화를 했다. ‘내일 기자회견을 해서 출마포기를 밝히라’고 요구했더니 (이 최고위원이) ‘알았다’고 했다.

그런데 다음날 회견을 하지 않고 그 다음날 대선 출마 회견을 하더라. 그 뒤로는 만나지도 않았다. 완전히 나를 배신한 것이다.

▽김대중(金大中) 대통령〓(김 대통령이) 92년 대선에서 패한 뒤 영국 런던으로 떠나면서 내게 전화를 했다. ‘당선을 축하한다. 나는 정치를 떠난다. 나라를 잘 이끌어 달라. 성공한 대통령이 되기 바란다’고 내게 말하더라. 그러더니 돌아와서 정치를 재개하고 내 임기 내내 나를 욕하고 발목을 잡았다.

▽DJ 비자금〓실명전환하지 않은 뭉칫돈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비자금이 폭로됐을 때 김 대통령은 겁을 먹었다. 법대로 했으면 잡아넣을 수도 있었다.

당에서 폭로했을 때 이 자료를 더 이상 터뜨리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안기부장을 추궁했더니 안기부에서 한 일이 아니라고 하더라. 나중에 배재욱(裵在昱) 대통령사정비서관이 한 것을 알고 노발대발했다. 그래서 수사를 중지시켰다.

▽김현철(金賢哲)씨 구속〓현철이를 구속하라고 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당시 김기수(金起秀) 검찰총장이 ‘죄가 안 된다’고 했지만 별 방법을 다 찾아서라도 잡아넣으라고 했다.

▽전두환(全斗煥) 노태우(盧泰愚) 전 대통령 구속〓박계동(朴啓東) 의원이 (‘노태우 비자금’을) 폭로한 뒤 학생들이 연희동을 습격해 대치가 계속된다는 보고를 받았다. 그냥 놔두면 두 사람이 결국 죽게 될 것 같아서 검찰에 ‘철저히 조사해 혐의가 드러나면 구속하라’고 했다.

둘을 구속한 뒤 내가 그만둘 때까지는 사면할 생각을 갖고 있었다. 당시 대선 후보였던 이회창 총재에게 이 얘기를 했는데 이 총재가 밖에다 얘기하는 바람에 차질이 생겼다.

▽경제위기〓나는 경제를 매우 걱정했는데 관료 학자 재벌 언론 누구도 금융위기를 얘기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현재의 김 대통령이 당시 노동법안과 한국은행법안 처리를 막고 기아자동차를 팔지 못하게 한 것이 (경제위기의) 결정적 원인이다.

▽클린턴 미국 대통령〓아주 친한 사이인데 94년에 싸우다시피 한 적이 있다. ‘북한의 버릇을 고쳐줘야 한다’며 클린턴이 전쟁을 하겠다고 해서 30분간 전화로 싸웠다.

나는 ‘몇 백만명이 죽을지 모르니 전쟁은 안 된다. 우리 군인은 단 한 명도 동원하지 않는다’고까지 했다. 이때 백악관―청와대 간 직통전화도 설치됐다.

<선대인기자>eodl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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