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님이 쓴 ‘향수’ 시 구절을 함께 암송하던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이제야 동생을 만나게 되다니….”
북측이산가족 방문단 명단에 정지용 시인의 셋째아들 구인씨(67)가 포함되자 형 구관씨(74·경기 의정부시 녹양동)는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구관씨는 지난해 10월 북한에 있는 동생 구인씨가 아버지와 어머니 송재숙씨(71년 사망), 여동생 구원씨(67)와 자신 등 가족을 찾는다는 소식을 들었다.
당시 구인씨가 보내온 가족명단에는 50년 납북됐다가 사망한 것으로 알려진 아버지 정지용 시인의 이름도 포함돼 있어 같은 북한땅에 살면서 서로 소식조차 모르고 살아왔음을 드러냈다.
“성격이 순해 어려운 일이 있어도 불평하는 법이 없는 착한 아이였지….” 구인씨는 배재중 학생이던 50년 6·25 발발 직후 아버지가 행방불명되자 “아버지를 찾으러 간다”며 집을 나선 뒤 연락이 끊겼다.
당시 정시인은 교직에서 물러나 서울 은평구 녹번동(당시에는 경기도) 자택에서 글읽기로 소일하던 중 “시내에 갔다 오겠다”며 나간 뒤 돌아오지 않았다고 구관씨는 설명했다.
며칠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는 아버지를 찾으러 온 가족이 나섰다가 그만 둘째 구익씨와 셋째 구인씨가 함께 행방불명됐던 것.
특히 구인씨는 공부도 잘했지만 아버지의 문화예술적인 재능을 물려받은 탓인지 피아노를 잘 쳐 형제 중 아버지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았다고 구관씨는 회상했다.
그는 “수년간에 걸친 증거 수집으로 87년 동아일보가 정지용 시인은 ‘월북’이 아니라 ‘납북’됐다고 보도해 88년 아버지의 작품이 해금됐을 때 아들의 도리를 다한 것 같았다”며 “하루빨리 동생을 만나 그동안 살아온 얘기를 나누고 싶다”고 말했다.
<의정부〓박정규기자>jangkung@donga.com
▼피바다가극단 김수조총장·공훈예술가 정두명씨 눈길▼
○…51년 1·4후퇴 때 북한에 두고 온 부인 김복녀씨(82)와 네 자녀를 만날 수 있게 된 이제배(李悌培·84·서울 강남구 도곡동)씨는 “잠시만 기다리면 곧 오겠다고 약속하고 홀로 떠나온 것이 너무도 가슴 아팠는데, 이번에 가서 용서를 빌어야겠다”며 눈물을 흘렸다.
이씨는 “남하할 당시 일제시대에 1년반 동안 징용을 갔다가 함경남도 단천군 광천면 용전리 집에서 병을 얻어 누워 있던 상황”이라며 “추운 겨울 날씨에 아이들을 데리고 올 수 없어 나만 홀로 포항까지 내려왔다”고 회상했다.
이씨는 그 뒤 남한에서 재혼해 남매를 두었다. 남한의 부인 김인선씨(71)는 “남편이 꿈에도 못잊고 안타까워하던 북한의 가족들을 잘 만나고 왔으면 좋겠다”며 “나에게도 새롭게 아들딸이 생기게 됐으니 기쁜 일 아니냐”고 말했다.
○…북한 집단체조 연출의 대가인 삼촌 김수조(金壽組·69)씨가 3차 이산가족 상봉단에 최종적으로 포함됐다는 소식을 들은 김복겸(金福謙·52·서울 은평구 신사동)씨는 “6·25 전쟁때 함께 월북한 아버지께서 살아 계신지 빨리 알고 싶다”며 감회에 젖었다.
김씨는 “삼촌이 당시 경복고 연극반에서 활동하면서 무용 발레에도 심취했다고 전해 들었다”며 “당시 세살이었던 나를 무척 귀여워하셨다던데 만나게 되면 내 얼굴을 알아보실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북한 피바다가극단 총장(책임자)인 김수조씨는 지난해 10월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미 국무장관이 방북했을 때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과 함께 관람한 집단체조 ‘백전백승 조선노동당’을 연출한 공로로 ‘공화국 영웅’의 칭호를 받은 인물.
○…“어머니, 북에서 두명의 형이 내려온대요.”
93세 노모의 손을 부여잡은 정두환씨(62·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는 목이 멨다.
6·25 전쟁때 납북된 형 정두명씨(67·공훈예술가)가 방문단의 일원으로 서울에 온다는 말을 들은 동생 두환씨는 “지금까지 형을 그리며 살아오신 어머니의 소원을 풀 수 있게 돼 정말 기쁘다”고 소감을 전했다.
두환씨는 “형이 경기중학교에 다닐 때 밴드부 활동을 하는 등 음악적 재능이 풍부했기 때문에 유명한 작곡가가 됐을 거라고 생각한다”며 “형에게 줄 용돈을 챙기라고 어머니께서 벌써부터 채근하신다”며 활짝 웃었다.
94년7월 김일성주석 영결식에서 연주된 ‘김일성 장군의 노래’를 편곡한 정두명씨는 취주악 작곡과 편곡에 뛰어난 능력을 발휘한 공로로 공훈예술가 칭호를 얻었다.
<전승훈·민동용기자>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