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당 방산업체의 입체적 로비는 물론 미 행정부와 의회의 노골적인 ‘요청’까지 동원되는 등 전방위적 행태를 띠고 있다.
한국이 주요 전력증강사업을 추진할 때면 어김없이 미국의 무기구매 압력이 가해졌지만 이번엔 그 양상이 특히 심각하다.
문제는 새로 출범한 조지 W 부시 미 행정부가 한국의 대북정책과 무기구매 문제를 연계할 듯한 느낌을 강하게 풍기고 있고, 한국으로선 이로 인한 ‘압박감’을 심하게 받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라는 점이다.
단적인 예가 7일 한미 외무장관회담에서 콜린 파월 국무장관이 이정빈(李廷彬)외교통상부장관에게 한국의 차세대전투기(FX)사업 기종으로 보잉사의 F15K를 채택해 줄 것을 요청한 것.
정부 관계자는 “대북정책 조율과 한미 정상회담 조기개최를 위한 회담에서 미국측이 FX사업을 거론했을 때 어떤 느낌을 받겠느냐”며 “파월장관이 회담 말미에 지나가는 말로 이를 언급했고 그 표현이 대단히 완곡했다고 하더라도 상대방은 압박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고 털어놓았다.
올해 한국은 FX, 공격용 헬기(AHX), 대공미사일(SAM―X)사업 등 10조원대의 대형 사업을 앞두고 있다. 이중 최첨단 전투기 40대를 도입하는 FX사업은 4조8000억원 규모로 건국이래 최대 규모. 보잉사의 F15K와 프랑스 닷소사의 라팔, 러시아 로스브로제니에사의 수호이 35/37, 유럽 컨소시엄의 유러파이터 2000이 각축을 벌이고 있다.
보잉사는 이 사업 수주를 위해 최근 한국 언론에 F15K 광고를 낸데 이어 토머스 피커리 부사장(전 국무차관)이 한국을 찾아와 국방부와 언론인들을 만나 홍보 설명회를 가졌다. 또 크리스토퍼 본드 상원의원이 지난달 방한해 조성태(趙成台)국방장관을 만나기도 했다.
육군이 추진중인 AHX사업도 비슷한 사례로 꼽을 수 있다. 지난달 하순 일부 언론이 AHX사업의 무용론을 제기했을 때 청와대와 국방부에서는 이에 매우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미국제인 AH64D 아파치롱보가 유력한 후보기종이기 때문. 당시 국방부에서는 “대통령의 방미를 앞두고 (미국제 무기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조성되면 안된다”는 말이 나돌았다.
이 때문에 군 안팎에서는 한국의 전력증강사업이 또다시 정치논리로 얼룩질 가능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다.
<이철희기자>klim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