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부문 개혁]눈앞 '반짝 실적'보다 正道를

  • 입력 2001년 2월 20일 18시 28분


“외환위기 직후 국민의 정부가 썩은 부문을 과감히 도려내는 구조조정을 하겠다고 발표할 때만 해도 위기를 잘 헤쳐나가면 선진국이 된다는 희망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비전이 사라졌다. 그게 가장 큰 문제다.”

4대 부문 개혁에 대해 최도성(崔道成·경영학) 서울대교수는 이 같이 강도 높게 비판했다. 다른 전문가들도 대체로 개혁성과에 대해 비판적이다.

▼4대개혁 성적 모두 낙제점▼

▽‘IMF관리체제는 끝나지 않았다’〓행정개혁시민연합은 김대중(金大中) 정부 출범 3년을 맞아 1월 30일부터 2월 10일까지 행정학회 회원과 시민단체 관계자 등 800명의 전문가를 대상으로 개혁 3년을 평가하는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20일 밝혀진 그 결과를 보면 개혁 성적표는 한마디로 낙제점을 맴돈다.

행정개혁에 대해서는 매우 잘못됐다(29.4%), 잘못됐다(47.1%), 보통(16.7%), 잘됐다(3.2%), 매우 잘됐다(0.5%) 등으로 나타났다. 공공개혁 방향은 옳다고 평가하면서도 이를 실현하기 위한 노력이 뒤따르지 못했고 그 결과로 나온 개혁성과는 저조하다는 것이다.

부문별로 4대 부문 개혁에 대한 성적표를 보면 만족도는 아주 낮다. 5점 만점에 3점을 보통으로 간주할 때 공공(2.16점), 노동(2.22점), 대기업구조조정(1.80점), 금융개혁(1.93점) 등으로 나타났다.

▽시한부 목표 설정 자체가 무리〓전문가들은 현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한 4대 부문 구조조정의 마스터플랜이 ‘언제까지 끝낸다’는 식의 시한부 플랜으로 변질됐다고 지적한다.

▼개혁 큰 방향 흔들림 없도록▼

▼글 싣는 순서▼

1. 4대부문 개혁의 성과와 한계
2. 기업개혁의 현주소
3. 금융개혁의 현주소
4. 공공(公共)개혁 및 노동개혁의 현주소
5. 전문가들은 이렇게 본다

오규택(吳奎澤·한국채권연구원장·경영학) 중앙대교수는 “당장 손해를 보더라도 정도(正道)로 밀고 나가야 할 사안들이 실적에 쫓기는 분위기 때문에 해당 정부 부처들이 당장 가시적인 성과를 내는 데 급급했다”고 말했다. 더욱이 정부는 지난해 국민의 개혁피로감에 대한 불만이 높아지자 기업과 금융 구조조정을 지난해 말까지 끝내고 공공부문과 노동개혁은 올 2월말까지 마무리하기로 발표했다가 상황에 따라 말을 바꿨다. 현 경제팀은 2월말까지 개혁의 큰 틀을 마무리짓고 3월부터는 시스템적인 개혁 대신 상시 구조조정 체제로 들어간다고 밝혔다.

▽산은 회사채 신속인수제도로 ‘현대문제’ 덮지 마라〓정운찬(鄭雲燦·경제학) 서울대교수는 “실물부문에서 부실기업이 퇴출되는 시스템은 아직 갖춰지지 않았다”며 “구조조정을 주도해야 할 정부가 여전히 기업구제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정교수는 “산업은행을 통한 회사채 신속인수제도는 금융기관과 정치권에 영향력이 큰 기업의 자금난을 덜어주는 것으로 회사채 만기가 돌아오는 3년 뒤에 부실문제가 다시 불거질 수 있다”고 염려했다.

이창용(李昌鏞·경제학) 서울대교수도 “이 제도가 특정기업에 주는 특혜성 조치가 아니라는 사실을 정부가 입증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덩치 큰 부실은행 퇴출시켜야〓2차 금융구조조정의 산물인 금융지주회사는 독자생존이 어려운 부실 금융기관들을 모두 한 데 모아놓은 것이다. 제대로 굴러가기가 어려울 것으로 보는 전문가들이 많다. 부실은행을 모두 클린뱅크로 만들기 위해 공적자금을 쏟아붓기보다는 가장 부실한 금융기관은 과감히 퇴출시키는 것이 낫다는 지적이다.

좌승희(左承喜) 한국경제연구원장은 “금융지주회사도 부실은행을 퇴출하는 것이 아니라 한 울타리에 넣고 보호하려는 결과가 되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공기업 인사 크게 잘못▼

▽공기업 낙하산인사 없어져야〓행정개혁시민연합이 설문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공기업 개혁의 문제점은 인사에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공직자 인사에서 가장 잘못된 분야는 공기업 사장에 대한 것으로 5점 만점에 겨우 1.64점에 그쳤다. 대법관인사(3.28점), 차관인사(2.95점), 대통령 수석비서관(2.60점), 국가정보원장(2.54점), 장관인사(2.30)에 대한 평가와 비교하면 매우 낮은 편. 공기업에 낙하산 인사가 횡행하는 데 대한 비판이다.

▽노동개혁, 정도와 원칙 지켜라〓최영기 한국노동연구원 부원장은 “노조전임자 임금지급금지와 복수노조 허용을 5년 미룬 것은 개혁차원에서 보면 옳지 않은 일”이라고 말했다.

한국은 100인 이하 영세노조가 60%를 차지할 만큼 노조가 취약한 편으로 노조가 없어야 기업경영이 잘 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는 것. 또 비정규직도 하나의 고용형태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제도보완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동원·최영해·김승진기자>money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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