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정부 출범3년]지지율 하락-강경파 득세

  • 입력 2001년 2월 23일 19시 01분


김대중(金大中·DJ) 대통령의 취임 3주년을 김영삼(金泳三·YS) 전 대통령의 그것과 비교하면 어떨까. 물론 정치적 환경은 많이 달랐다. YS는 96년 4월의 15대 총선을 앞두고 있었으나 DJ는 취임 후 처음으로 선거가 없는 해를 맞고 있다.

그러나 DJ도 그렇듯이 YS도 취임 3주년을 ‘정권 성패의 분수령’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성공한 대통령으로 남느냐의 여부가 판가름나는 결정적인 시기로 보았던 것.


▼"개혁-진보" 구호외쳐▼

▽정통성 강화와 레임덕 방지〓YS는 급속한 지지율 하락 속에서 ‘역사 바로 세우기’를 통해 정권의 정통성을 강화하고 레임덕 현상을 막으려고 했다.

YS는 95년 10월 노태우(盧泰愚) 전 대통령의 4000억원 비자금설이 폭로되자 철저한 수사를 지시한 뒤 “이번 사건을 계기로 문민정부의 도덕성을 실감케 하겠다”고 선언하고 전두환(全斗煥) 노태우 전 대통령 사법처리와 함께 5·18 특별법 제정이라는 충격적인 카드를 내놓았다. YS는 이로써 6·27 지방선거 패배의 충격에서 벗어나 정국 주도권을 되찾을 수 있었다. YS다운 반전이었지만 정국은 급랭했다.

반면 DJ는 ‘강한 정부, 강한 여당론’의 기초 위에서 4대 개혁 완수와 남북관계의 진전을 통해 집권 후반기의 정치 안정을 꾀하고 있다. ‘역사’ 대신 ‘개혁과 진보’를 통해 정권의 도덕적 기반을 유지 강화하고 있는 셈인데 이는 YS와 비슷한 점이 없지 않다. 다른 점이 있다면 소수파 정권으로서의 한계다. 지지기반이 YS에 비해 작고 엷기 때문에 도덕성이나 명분만으로는 정치적 안정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 따라서 레임덕 현상이 더 빨리 올 것이란 관측이 많다.

▽강경파의 득세와 야당〓DJ의 ‘강한 정부론’은 레임덕을 막기 위한 나름대로의 승부수로 보이는데 이는 자연스럽게 강경파의 득세로 이어진다고 보는 사람도 있다.

▼정국주도권 노려 野압박▼

고려대 함성득(咸成得·대통령학) 교수는 “한국 대통령의 경우 집권 3년째가 되면 레임덕 방지가 지상과제가 되고 그 과정에서 강경파가 득세하게 된다”고 해석했다.

그의 해석이 아니더라도 YS의 경우엔 대표적 강경파로 꼽혔던 민자당 강삼재(姜三載)사무총장의 발언권이 이 때 가장 컸다. DJ의 경우 민주당 김중권(金重權) 대표를 그 자리에 놓고 보는 사람들도 있다.

이런 정국 기조에서 야당은 수세에 몰릴 수밖에 없다. 95년 국민회의를 창당한 DJ는 노 전대통령으로부터 20억원을 받은 사실을 고백할 수밖에 없었다.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는 지금 ‘안기부 돈 선거자금 유입’사건으로 압박받고 있다.

▼차기 대권구도 수면위로▼

▽대선주자그룹 형성〓집권 3년은 차기 대선 1년 전으로 ‘대권논의’가 시작되는 시점이다.

YS의 집권 3주년도 그랬다. 특히 95년 말 이수성(李壽成) 서울대총장을 신임 총리로 발탁한 YS가 15대 총선을 앞두고 이회창 전 총리와 박찬종(朴燦鍾) 전 의원을 영입함으로써 이른바 ‘9룡(龍) 각축’의 구도가 윤곽을 드러냈다.

YS의 총선 패배 위기의식이 이회창, 박찬종씨 영입으로 나타났으나 오히려 이들의 영입이 대선 주자 그룹 형성으로 이어져 레임덕을 가속화시키는 결과를 빚었다.

DJ 역시 여소야대의 한계를 절감하고 김중권 대표 체제를 출범시켰으나 김 대표의 등장으로 그동안 수면 아래에 있던 여권내 대선 주자들의 각축 구도가 가시화되고 있다.

<김창혁기자>c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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