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과 북으로 헤어져 살아온 지 50여년 만인 15일 남쪽 어머니 박명란씨(101·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에게 전달된 북의 아들 김성하(金成河·74·김일성종합대 철학부교수)씨의 애달픈 편지는 이렇게 시작됐다.
성하씨의 편지는 이날 남북 이산가족 서신교환에 따라 판문점을 통해 남쪽의 동생 김민하(金玟河·67)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에게 전달됐다. 성하씨는 2장 분량의 편지지에 반세기의 그리움을 절절히 토해냈다.
편지에는 또 이미 죽은 줄로만 알았던 김 부의장의 셋째 누나 옥희(玉姬·74)씨와 다섯째형 창하(昌河·70)씨가 생존해 있다는 사실과 함께 최근에 함께 찍은 사진 두장도 동봉돼 있었다. 김 부의장은 “6·25 전쟁 와중에서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는 비극을 겪었지만 형님의 편지를 통해 가족 2명의 생존사실을 추가로 확인해 5남5녀 모두가 살아 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됐다”며 감격스러워했다.
하지만 50년 세월 내내 “성하야, 성하야…”를 되뇌며 아들의 소식을 그토록 애타게 기다리던 어머니 박명란씨는 자식의 숨결이 담긴 편지가 왔다는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따금 눈을 깜빡거리며 짧은 신음소리만 뱉어낼 뿐 의식을 차리지 못했다.
지난해 8월 TV로 중계된 이산가족 상봉장면을 지켜본 뒤 시름시름 앓다가 급작스레 의식불명에 빠진 뒤 여의도에 살고 있는 넷째아들 윤하(潤河·72·헌정회 정책위의장)씨 집에 몸져누웠기 때문.
“어머니 성하형이 편지를 보내왔어요”라며 형님의 편지를 큰소리로 읽어 내려가던 김 부의장은 끝내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는 어머니를 보면서 “8개월만 빨리 왔어도…”라며 흐르는 눈물을 참지 못했다.
김 부의장은 “제가 어려서 늑막염으로 고생할 때 성하형이 산골을 헤매며 약초를 구해주시고 한약방을 돌아다닐 정도로 형제애가 돈독했다”며 “앞으로 있을 4차 이산가족 상봉 때 형님이 꼭 서울을 방문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하태원기자>scooo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