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우리나라의 의문사 1호’ 고 최교수 사건의 진상규명을 위해 귀국, 수기를 출판했던 최씨가 최근 “동일방직 해고자들이 78년 노조운동에 대한 당국의 개입과 권리침해 사실을 입증하지 못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19일 ‘민주화운동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에 출석해 당시 중정 경기도지부 노사문제 담당관으로서 자신이 사건에 개입했거나 들어 알고 있던 내용을 증언키로 결심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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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종선씨 증언내용 전문 |
▼'똥물 투척사건' 중앙정보부가 사주▼
최씨의 증언은 크게 두 가지 대목에서 주목된다. 우선 당시 노조원들에 대한 이른바 ‘똥물 투척사건’을 주도 내지 배후조종한 혐의를 받는 섬유노조의 조직행동대가 ‘중정 2국(보안정보국) 경제과’의 사주로 이 사건에 개입했다는 사실이다.
최씨는 당시의 기억을 되살려 “노조 선거를 앞두고 78년 2월초 인천 신포동의 배명여관에 수상한 청년 수십명이 들락거린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현장에서 책임자 우모, 맹모씨를 불러 상황을 파악했다”면서 당시 이 두 사람이 “우리는 동일방직 노조를 깨부수러 왔다” “구체적인 내용은 ‘위’(또는 ‘서울 본부’)에서 다 알고 있으니 거기 물어보라”고 대답했다고 밝혔다.
그 뒤 최씨는 중정 2국 경제과의 최모 담당관 앞으로 수차례 항의성 보고서를 보내고 전화통화도 했으나 결국 의견이 맞지 않아 ‘도지부는 이 문제에서 손을 떼라’는 지시를 받기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대규모 해고에도 개입▼
두 번째는 노조원들의 단식농성 등으로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되면서 결국 당국의 수습책임을 맡게 되었을 때 최씨 자신이 ‘구속자 석방’을 약속하고 처우개선 등을 회사측에 요구해 관철시키기도 했으나 “노조측이 사업장에 복귀하지 않아 사흘의 시간을 준 끝에 본부에 보고한 뒤 124명 농성자 전원을 4월1일 해고하도록 조치했고 노조도 새 집행부를 구성토록 했다”고 밝힌 것.최씨는 이 과정에서 경기도와 인천시, 노동청, 경찰 등 관계자들이 참석하는 ‘경기도 노동대책회의’를 수차례 소집해 해고 결정 등의 각종 문제를 사실상 자신의 주도 아래 다뤄나갔다고 소개했다.
민주화운동관련자 보상심의위측은 이같은 최씨의증언을 전해듣고 “노조 활동에 중정 등 관계당국이 개입했으며 해고과정까지 주도했다는 증언은 동일방직 노조문제의 성격 규정에 결정적”이라고 평가했다.최씨는 18일 당시 동일방직 노조의 이총각지부장과 23년 만에 처음 만난 자리에서 “형님의 의문사사건에 대한 양심선언과 협조를 호소하면서 124명의 억울한 사정을 알고도 침묵을 지킬 수 없어 다소 마음의 부담을 무릅쓰고 증언키로 했다”고 말했다.
<김창희기자>insigh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