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은 민주당 내 두 정책통인 이최고위원과 김원길(金元吉)의원을 각각 당 정책위의장과 보건복지부장관에 전진배치한 것은 현 정권 최대의 고민거리인 건강보험 재정파탄 사태를 조기 수습하겠다는 김대통령의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김영환(金榮煥)대변인도 공식 브리핑을 통해 “의약분업에 관여했던 두 정책위의장 출신으로 하여금 문제를 해결토록 하기 위해서”라고 인선배경을 설명했다.
이 말은 김대통령이 의약분업을 당초 방침대로 밀어붙이겠다는 뜻을 함축하고 있다. 또한 김대통령은 건강보험 재정파탄 사태를 ‘원천적인 잘못’ 때문이 아니라 ‘시행상의 착오’로 인식하고 있다는 얘기도 된다.
그러나 이최고위원의 정책위의장 재기용 의미를 의약분업 문제에만 국한해서는 안된다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이최고위원은 대통령직인수위 시절부터 정책분과 간사로서 현 정부 개혁정책의 밑그림을 그렸고, 그후에도 ‘개혁의 전사’로서의 이미지를 국민에게 확실히 각인시켰기 때문이다.
특히 이최고위원이 교육부장관 시절 밀어붙인 교원정년 단축 등 일련의 개혁조치는 민주당 내에서조차 ‘개혁 악수(惡手)’의 대표적 사례로 꼽는 사람이 있을 만큼 ‘이해찬식 개혁드라이브’는 명암이 뚜렷해, 언제나 거센 논란을 일으켰다.
그런데도 김대통령이 ‘이해찬 정책위의장’이라는 카드를 던진 것에 대해서는 여권 인사들 조차 의외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많다. 이들은 건강보험 재정파탄 사태가 현 정부 개혁 전반에 대한 회의론으로 비화될 조짐을 보이자, 김대통령이 이를 차단하고 ‘개혁 초심(初心)’을 강조하기 위해서일 것으로 이해하면서도, 우려의 목소리를 숨기지 않고 있다.
관료사회도 술렁거릴 가능성이 있다. 이최고위원은 ‘민주당의 최틀러(한나라당 최병렬의원의 별명이 최틀러임을 빗대서 하는 말)’라는 소리를 들을 만큼 공직자들의 무사안일과 보신주의에 대해서는 가차없이 ‘채찍’을 드는 인물로 잘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이 점에 관한 한 김원길 보건복지부장관도 마찬가지다. 김대통령은 바로 이런 점도 고려했을 가능성이 크다.
여권의 한 핵심인사는 “김대통령은 건강보험 재정파탄 사태를 겪으면서 관료들에 대한 실망감이 깊어진 것 같다”며 “최근 국무회의 때 ‘무언(無言)의 경고’를 보냈다면 이최고위원의 재기용으로 ‘유언(有言)의 경고’를 보낸 게 아니겠느냐”고 풀이했다.
하지만 김대통령 자신이 김원길 장관 임명 때 언급했듯이 사태 해결의 관건은 국민의 신뢰회복 여부라고 할 수 있는데, 이최고위원의 정책위의장 재기용은 아귀가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많다. 이최고위원 이미지 때문이다.
한나라당은 즉각 권철현(權哲賢)대변인의 논평을 통해 “교육부장관 시절 이 나라 교권을 붕괴시키고 교육을 완전히 황폐화시킨 장본인이며, 작년 의약파동 당시 민주당 정책위의장으로서 의약분업 반대론자들을 반개혁세력으로 몰아세우고 의약분업을 강행해 파탄을 자초한 주범”이라고 비난하고 나섰다.
권대변인은 이어 “아무리 인물이 없다고 이처럼 지탄받는 부적격자를 재기용한 것은 김대통령이 더욱 ‘오기정치’에 매달리고 있다는 것”이라며 이의장에 대한 임명 철회를 요구했다.
<김창혁기자>chang@donga.com
▼입다문 이해찬…인터뷰요청 이례적 거절▼
전격적으로 민주당 정책위의장에 재기용된 이해찬(李海瓚) 최고위원은 25일 언론의 인터뷰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김영환(金榮煥) 대변인이 몇 차례나 전화를 걸어 “당사에 나와 기자들과 인터뷰를 하는 것이 좋겠다. 전화 인터뷰라도 응해 주라”고 요청했으나 이 의장은 이마저도 거부했다. 대신 그는 김 대변인을 통해 “생각을 정리해서 26일 입장을 밝히겠다”고만 말했다.
신임 당직자의 이 같은 태도는 극히 이례적이다. 따라서 당내에서는 불과 몇달 전 스스로 내던진 자리에 복귀하는 것에 대한 불만의 표시가 아니냐는 등의 뒷말도 나왔다. 정책위의장은 공식서열이 최고위원보다 낮다.
그러나 당 관계자들은 “이 의장이 정책위의장으로 있을 때 시작한 의약분업이 경위야 어떻든 정권의 ‘악재’가 되고 있는 듯한 상황에서 다시 그 자리를 맡게 된 데 대한 부담감과 민감한 시기에 섣불리 입을 열지 않으려는 조심성 때문이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윤종구기자>jkma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