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년 국민대에서 학생운동으로 제적당한 후 노동운동에 투신, 81년 전민노련(전국민주노동자연맹) 사건에 연루돼 사형 구형에 무기형을 선고받고 7년여 동안 감옥살이를 했다. 86년 국제사면위원회는 그를 ‘세계의 양심수’로 선정하기도 했다.
이수석은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의 악연도 있다. 96년 총선 때 신한국당이 그를 영입하려 하자 당시 야당이던 국민회의(민주당의 전신)가 그의 전력을 문제삼았다. 당시 그는 “김대중 총재의 색깔론 제기에 인간적 배신감과 서글픔을 느낀다”고 말하기도 했다.
김대통령이 지속적인 구조조정의 성공 여부에 정권의 명운을 걸고 있는 시점에 왜 그와 같은 인물을 발탁했을까. 노사도 이수석의 기용에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 관계자는 “정부의 노동정책이 ‘친 노동계’ 쪽으로 바뀌는 것인지, 그를 통해 노동계의 무리한 요구를 추스르려는 것인지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한국노총 관계자는 “노동계 사정을 잘 아는 사람이라 기대가 크지만 한 사람의 행보가 정부의 노동정책을 변화시킬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다음과 같은 사례를 들며, 김대통령이 그의 균형감각을 높이 샀을 것이라고 전했다. 외환위기를 겪던 97년 ‘경제난 극복을 위한 노동계추진위원회’ 대표였던 이수석은 “노동자도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남의 탓을 하기 전에 내 탓이라는 공감대를 형성하자”고 주장했다는 것.
그보다는 DJ 정권에 대한 실망감으로 요즘 심상치 않은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노동계에 대한 김대통령의 위기의식이 이수석 발탁의 주 원인이라는 것이 정치권의 일반적인 분석이다. 다음은 이수석과의 문답 요지.
―왜 발탁됐다고 보나.
“복지 노사 등 현장을 두루 잘 살펴 대책을 만들라는 의미로 안다.”
―경제계의 우려가 큰데….
“그렇지 않다. 현대중공업 지하철공사 한국통신 파업 등 노사정 갈등이 대두될 때마다 조정역할을 하고 중재안을 내놓은 것을 경제인들도 잘 알고 있다.”
―김대통령과의 인연은….
“87년 대전교도소에 있을 때 면회를 왔었다. 출소 후 정치를 같이 하자는 제의를 여러 번 받았다.”
<윤종구기자>jkma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