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남 日밀입국 미스터리]단순관광설… 망명설…

입력 2001년 5월 4일 18시 2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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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의 장남 김정남으로 확실시되는 인물이 위조여권으로 일본에 불법입국하려다가 체포된 사건에는 풀리지 않는 몇가지 궁금점이 있다. 일본 당국은 4일 그의 신원을 밝히지 않은 채 중국으로 추방함에 따라 갖가지 억측만 무성할 뿐이다.》

▽일본에 왜 갔을까〓일본의 북한 전문가들은 그가 김정남이란 사실을 전제로 그의 방문 목적을 관광과 정보기술(IT) 시찰 등 두가지로 보고 있다. 또 크게 보면 후계자로서의 ‘제왕수업’이라는 시각이 많다.

오코노기 마사오(小此木政夫·북한정치) 게이오대 교수는 “그가 특수 임무를 갖고 왔다고는 보기 어렵다. 공식 후계자로 지명돼 정치무대에 데뷔하기 전에 되도록 해외경험을 많이 쌓고 견문을 넓히려 했던 것 같다”고 추측한다.

그가 체포 직후 “디즈니랜드에 가고 싶다”고 밝힌 것도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 한 북한 전문가는 “일본에 호감을 갖고 있는 그가 가족에게 이곳저곳을 보여주고 싶었을 것”이라며 “아키하바라 등에 들러 일본의 IT분야를 둘러보는 다목적 관광으로 생각된다”고 말했다.

그가 망명을 시도했을 수도 있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으나 그다지 신빙성은 높지 않다. 공산당 기관지 아카하타의 평양지국장을 지냈던 하기와라 료는 “김정남은 배 다른 동생 정철과 후계자 다툼을 벌이고 있는데 김 위원장이 최근 정철의 생모를 총애해 신변의 위협을 느끼고 망명을 시도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가 체포된 뒤 신분을 선뜻 밝히지 않고 ‘중국으로 보내달라’고 요구한 점 등을 보면 망명설은 사실무근에 가깝다.

▽왜 도미니카 여권인가〓그는 도미니카에서 발행한 위조여권을 갖고 있다가 체포됐다. 나리타(成田)국제공항 입국심사국 직원은 “그가 도미니카 여권을 제시했는데 전혀 남미사람처럼 보이지 않았고 스페인어도 전혀 못해 수상했다”고 말했다.

일본 법무성측도 도미니카 위조여권이 발견된 것은 극히 드문 일이라고 설명했다. 위조여권은 출신국과 가까운 나라 것을 사용해 눈에 띄지 않게 하는 경우가 보통이다. 그러나 남미여권은 일본 입국 비자가 필요하지 않다는 이점이 있다.

출발지가 싱가포르인 것은 그 곳이 북한의 대외창구역을 하는 국가이기 때문일 수도 있고 세계 다른 나라를 다니다 싱가포르를 거쳐 일본으로 갔을 수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일행은 누구고 왜 경호원은 없는가〓북한의 후계자 물망에 오르는 거물이 경호원도 없이 여행을 할 수 있을까. 이 때문에 한때 김정남 망명설이 퍼지기도 했다.

그가 외국에 오래 살아 외국어에 능통하고 호방한 성격인 데다 가족단위의 여행인 만큼 경호원을 물리쳤을 가능성이 높다. 그와 동행하다 체포된 여성은 북한 고려항공사 사장의 딸 신정희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녀는 김정남보다 연상이고 둘 사이에 ‘소리’라는 네 살짜리 아들이 있다는 소문이 있으나 정식 결혼 여부는 알려지지 않았다.

▽일본은 사전 정보 있었나〓황금연휴기간 중 관광객으로 혼잡한 나리타공항에서 적발됐다는 것은 일본이 이들의 입국정보를 사전에 갖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입국심사장 주변에 요원들이 미리 배치돼 있다 일행이 입국장을 통과하는 순간 위조여권소지를 알리는 신호가 울리자마자 체포했다고 요미우리신문이 전했다. 이 과정에서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결정적인 제보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게 사실이라면 미국은 왜 정보를 흘렸고 일본은 왜 일행을 급거 체포했을까. 최근 북―미 관계가 껄끄러운 가운데 미국이 북한의 약점을 잡으려 했다는 추론도 가능하다. 일본 역시 제발로 걸어들어온 거물을 붙잡았다가 풀어줌으로써 북―일 관계 개선의 돌파구로 삼으려 했다는 ‘잘 짜여진 시나리오’로 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