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이들을 추방함으로써 북한에 화해 제스처를 보낸 것으로 볼 수 있다. 구속기소를 하지 않고 외교적 마찰이 덜한 강제추방 쪽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는 당초 북한과 직접 접촉해 신병을 넘겨 주려고 시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체포 사실이 언론에 알려지면서 계획이 무산되자 ‘조기 강제추방’ 쪽으로 돌아선 것. 오래 붙잡아두면 북한의 대응 여하에 따라서는 양국관계가 더욱 경색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일본이 이 남자가 김정남인지를 확인하지 못했다고 밝히고 있는 것도 북한에 대한 배려 차원이다. 최고지도자의 아들이 위조여권을 사용했다는 것이 확인될 경우 북한측의 자존심은 구겨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런 배려가 먹혀들어 지난해 10월 이후 중단된 수교교섭과 일본인 납치문제에 북한측이 성의를 갖고 나서줬으면 하는 것이 일본정부의 속셈이다. 그러나 북한이 어떻게 나올지는 아직 미지수다. 체포 사실이 공개된 것이 일본 정부가 생색을 내려고 일부러 언론에 흘렸다는 시각도 있기 때문이다.
▲중국
마찬가지로 궁지에 몰린 북한측을 배려한 것이다. 이들이 다른 곳으로 추방돼 김정남의 신분과 행적이 노출되면 북한이 국제적인 망신을 당할 수밖에 없게 된다. 따라서 북한의 후견인 역할을 자임하고 있는 중국이 궁지에 몰린 북한을 위해 발벗고 나섰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또 이들을 받아들임으로써 그가 ‘진짜 김정남’임을 밖으로 알리는 효과를 노렸을 수도 있다. 북한과 항공편 및 철도가 연결돼 있는 베이징을 통해 평양으로 돌아가게 함으로써 중국으로서는 그가 김정남임을 서방세계에 은연중에 알려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것. 북한측에는 ‘구원의 손길’을 내밀었으며 이 사실을 국제사회에 알려 북한에 대한 중국의 독점적인 영향력을 다시 한번 확인해 주려 했다는 분석이다.
이 밖에 일본과의 물밑대화를 통해 그를 받아들임으로써 교과서 왜곡문제와 리덩후이(李登輝) 전 대만총통 방일 등으로 악화된 양국관계를 개선하도록 일본을 압박하는 효과도 노렸다는 것이다.
<도쿄·베이징〓심규선·이종환특파원>ksshim@donga.com
▼열차대신 고려항공편으로 돌아갈듯▼
짧은 머리에 금테안경과 금목걸이. 사흘간 조사를 받은 탓인지 텁수룩한 수염. 갈색 조끼에 검은 셔츠의 30대 남자가 승합차에서 내려 수십m를 걸은 뒤 비행기 트랩에 올랐다. 얼굴을 찌푸리며 신경질적인 표정을 짓기도 한 그의 모습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꼭 닮았었다. 4일 북한 최고권력자의 유력한 후계자로 보이는 사람이 외부세계에 모습을 드러낸 순간이었다.
○…김정남으로 확실시되는 이 남자 일행의 일본 출국과 중국 입국 때 양국 당국은 삼엄한 경계를 폈다. 이들과 같은 비행기를 탄 한 승객은 “이들 일행에게 자신들의 추방사실을 담은 뉴스를 보여주지 않으려는 듯 항공사가 기내에서 뉴스방송까지 틀어주지 않았다”고 전언.
○…베이징(北京) 서우두(首都)공항에 도착한 이들 일행은 비행기 1층에 탑승했던 일반 승객들이 이동브리지를 통해 모두 빠져나간 뒤 트랩을 이용해 직접 활주로로 내려 북한 대사관에서 나온 승합차량에 곧바로 탑승. 이들은 이어 대사관 관리들의 안내로 공항 2층 귀빈실로 가 머물다 오후 4시경 대사관 승용차편으로 공항을 빠져나가 어디론가로 향했다.
이날 베이징 주재 북한대사관은 평소와 마찬가지로 조용한 분위기라 이들 일행이 예상과 달리 북한대사관이 아닌 제3의 장소에서 머물고 있음을 시사.
○…이들이 북한으로 돌아가는 방법은 4일 오후 열차편이나 5일 오전 북한 고려항공편이 가능. 열차편은 노출을 피하려면 특별열차를 배정해야 하는데 이렇게 하면 김정남이라는 또 하나의 증거를 제공하는 셈이므로 비행기편으로 귀국하는 방안을 택했다고 중국 공안당국자가 전언. ○…1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중국 방문 때 김정남도 베이징에 들러 장쩌민(江澤民) 국가주석의 아들 장@헝(江綿恒)과 만나는 등 중국을 자주 방문했던 것으로 확인. 그는 또 90년대 중반 가명으로 베이징의 캠핀스키호텔에 투숙한 것이 목격되기도 했으며 96년경 베이징 교외 순이(順義)현에 초호화빌라를 구입해 방문 때마다 이용했다는 것. 이 빌라는 현재 시가 150만달러를 호가하고 있으며 이번에 동행한 것으로 추정되는 고려항공사 사장 딸인 신정희씨도 96년부터 2년간 이곳에 거주했다고. 그러나 신씨의 거주 사실이 공개되자 이를 처분하고 서우두공항 인근에 또 다른 안가를 마련했다고 한 소식통은 전언.
<베이징·도쿄〓이종환·심규선특파원>ljhzip@donga.com
▲북 외무성 "체포사실 모른다"▲
북한 외무성은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의 장남 김정남(金正男)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일본에서 체포된 사실에 대해 “전혀 모른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4일 ‘러시아의 소리’ 방송이 보도했다.
외무성 대변인은이 인물의 체포에 관한 러시아 이타르타스통신 기자의 물음에 대해 이같이 대답한 뒤 “공화국(북한) 외무성은 조선 지도자의 아들로 자처하는 사람이 일본에서 구류된 데 대한 소식을 갖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고 이 방송은 전했다. 이 방송은 또 “일본 정부는 그(김정남으로 추정되는 인물)를 중국으로 보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