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당시 법무부와 대검, 서울지검은 갑자기 한산해지기 시작했다. 밤 10시 무렵에는 주요 간부들이 모두 퇴근했다.
이런 현상은 바로 1시간 전이나 안장관의 취임자료 사건이 처음 터진 21일 밤과는 정반대의 분위기였다. 이전에는 법무부와 대검의 주요 간부들과 검사들이 전면에 나서 사태 해명에 심혈을 기울였다.
이같은 반전에 대해 일선 중견간부는 "사실상 상황이 끝났다" 고 말했다. 더 이상의 해명이 불가능하다는 판단을 내렸다는 것이다. 이것은 안장관에 대한 '포기'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한 중견 검사는 "이제 안장관 스스로 결단을 내리는 수 밖에 없다" 고 말했다.
검찰이 이런 판단을 내린데는 무엇보다 '김태정(金泰政) 학습효과'가 크게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99년의 '옷로비 의혹사건'은 몇몇 고관 부인들의 단순한 '고급 의상실 쇼핑' 사태에서 비롯돼 '거짓말 사건' 으로 번져 검찰과 정권의 씻기 어려운 상처로 남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번 사건도 자칫 잘못 하다가는 옷로비 의혹사건의 재판(再版)이 될 것을우려한 것으로 보인다.
법무부와 검찰 간부들은 안장관의 충성문건 을 대신 작성했다고 주장한 이모 변호사의 골프장 출입 사실이 알려진 22일 오후 7시 무렵부터 1시간여에 걸쳐 이변호사의 골프장 출입 사실관계에 대한 정밀검사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21일 오전 9시20분에 경기 이천지역의 D컨트리클럽에서 골프를 시작, 오후 1시에 골프를 끝내고 서울 서초동 사무실로 돌아오던 중 오후 2시반경 안장관 전화를 받고 오후 3시에 사무실에 도착, 문건을 작성했다는 이변호사의 알리바이에 대해 정밀검증을 한 것. 검찰은 검증 결과 이변호사의 해명을 믿기 어렵다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한 중견 검사는 "아무리 평일이라고 하지만 4시간만에 골프를 끝내고 귀경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고 말했다.
따라서 검찰은 고심 끝에 '더 이상 거짓말 행진에 동참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태를 모면하기 위해 안장관과 이변호사의 해명을 밀고 나가다가는 검찰, 더 나아가서는 정권 스스로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을 수 밖에 없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한 검사는 "두번 다시 옷로비 사건을 되풀이 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이런 판단 하에서 검찰과 법무부는 이 사태에 대한 개입 을 멈추고 안장관 개인에게 사태해결을 맡긴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안장관에 대한 최대의 우군(友軍)인 검찰이 포기 한 것을 의미하고 이는 곧 안장관의 자발적인 사퇴로 이어질 수 밖에 없는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이같은 검찰이나 법무부의 판단이 청와대나 여당과의 사전 협의 또는 교감을 거쳐 내려졌느냐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검찰 관계자는 "검찰 스스로의 판단이며 청와대 등 정치권과의 협의는 전혀 없었다" 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앞으로 인사권을 쥔 곳에서 어떤 판단을 할지 우리는 전혀 모른다" 고 말했다. 검찰 스스로의 생존을 위한 독자적인 결론이라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정치권과의 사전 양해나 교감 없이 검찰이 이런 판단을 했을 가능성은 적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검찰과 정치권의 사전 교감이나 협의 여부는 이제 더 이상 의미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설사 안장관의 거취에 관해 정치권이 다른 생각을 갖더라도 현장 의 판단이 안장관을 떠난 이상 안장관의 운명은 이미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다고 봐야할 것이다.
<이수형기자>soo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