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라서 안 장관의 자진사퇴는 인사권자인 김 대통령의 정치적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고려가 우선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 파문은 논란의 여지가 없는 김 대통령의 명백한 인사실책 사례로 규정될 게 분명한 만큼 형식이야 어떻든 안 장관이 물러나는 것 외에는 퇴로가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이같은 점으로 볼 때, 아직 안 장관이 자진 사퇴를 결심하게 된 구체적인 경위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여권 관계자들이 유형 무형의 영향력을 행사했을 가능성이 없지 않다. 현 정부 들어 여러 차례 각료 인선 파문이 있었지만 이번 처럼 장관이 임명장을 받은 지 이틀만에 물러나게 된 전례가 없었다는 점에서도 여권이 느끼는 압박감을 짐작할 수 있다.
여권 관계자들은 22일 오후까지만 해도 "문건의 내용이 어떻든 간에, 실제로 얘기하지 않은 내용을 가지고 문제 삼기는 어려운 것 아니냐" 며 이번 파문을 단순한 해프닝으로 간주하려는 분위기였으나 이날 밤부터 "달리 방법이 없다" 며 사퇴 불가피론으로 기우는 모습이었다.
'충성 문건' 내용 중 여권 관계자들이 가장 곤혹스러워 한 것은 '정권 재창출'을 언급한 대목이었다. 법무부장관과 검찰총장 인선 전부터 한나라당이 가장 촉각을 곤두세운 것도 여권의 정권 재창출 구상을 뒷받침하기 위한 인선이 이뤄지는 게 아니냐는 것이어서 정권 재창출 언급은 정국의 뇌관을 건드린 셈이었다고 할 수 있다.
안 장관의 자진 사퇴로 급한 불을 껐다 해도 이번 파문으로 인한 여권의 내상은 쉬 치유되지 않을 것 같다. 무엇보다도 안 장관 인선이라는 변명하기 어려운 인사오류는 집권후반기 김 대통령의 통치부담을 더욱 가중시킬 게 분명하다. 한나라당 또한 직접 김 대통령을 타깃으로 삼아 정치공세를 펼칠 가능성이 있다.
<윤승모 윤영찬기자>ysm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