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법무 사퇴]여권 "충성파만 중용 억지 인사"

  • 입력 2001년 5월 23일 18시 53분


“가뜩이나 소수세력인 현 정권이 지지율이 하락하면서 자꾸 움츠러들고 있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우선 믿을 만한 사람을 찾게 되고 자연 관료조직 내부에서조차 인정받지 못하는 인사가 이뤄지는 경우가 있다.”

민주당의 한 의원은 23일 안동수(安東洙) 법무부장관의 사퇴 소식을 듣고 이렇게 말하면서 한숨을 쉬었다. 그는 다음과 같은 사례도 들었다.

“이무영(李茂永) 경찰청장 경질론이 제기된 지난달 중순 여권 핵심인사 두 사람에게 ‘왜 이청장을 사퇴시키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그들은 ‘이청장만큼 충성할 사람이 누가 있느냐’고 답했다. 그 얘기에 나는 입을 굳게 다물었다.”

언제부터인지 여권 관계자들은 인사철이 다가오면 걱정부터 한다. 자질과 능력이 부족한 인사가 발탁돼 구설수에 오르거나 뜻밖의 실수로 정권 전체에 부담을 준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매번 가슴을 졸이면서도 뚜렷한 해법은 없다.

인재 풀(두뇌 집단)도 작지만 인선 과정에서 지역, 여권 실세들과의 연(緣)과 충성심을 우선 고려해야 하므로 선택의 폭이 클 수가 없기 때문이다.

안 전장관과 지난해 12월 학력 시비로 중도 하차한 박금성(朴金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은 검찰과 경찰 내부에서부터 강한 반발을 샀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박 전청장은 현 정권 출범 후인 98년 경무관 승진을 했고 이어 불과 2년9개월여 만에 서울경찰청장까지 초고속 승진을 해 경찰 내부에서 말들이 많았던 것이 사실이었다.

이 때문에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나 측근 실세들이 사람을 고를 때 적임자인지를 따지기보다는, 정권 유지에 도움이 되는지 여부를 더 중시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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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에서 검증, 그리고 낙점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 불투명해 공정한 인선을 더 어렵게 한다는 얘기도 많다.

안 전장관의 경우도 문제가 되자 ‘누가 추천했느냐’를 놓고 당과 청와대가 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듯한 볼썽사나운 모습을 연출했다.

인사 파행의 원인을 인재 풀 미비에서 찾는 시각도 있다.

민주당 이인제(李仁濟) 최고위원은 이날 고려대 언론대학원 특강에서 “정권교체가 됐다고 해도 사실상 대통령만 교체되는 수준에 머물렀고 실제로 정권을 바꿀 수 있는 인재 풀은 바뀌지 않았다”며 “(인사 파행을 막기 위해) 두뇌집단의 건설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윤영찬기자>yyc11@donga.com

▼한나라 "DJ 오기 인사가 빚은 참사"▼

“소령 출신을 국방장관을 시켰으니 장군들이 가만히 있겠느냐.”

법무부장관 출신의 한나라당 김기춘(金淇春) 총재특보단장은 23일 안동수(安東洙) 법무부장관의 사퇴를 보면서 이렇게 말했다. 평검사 출신인 안 장관을 법무장관으로 임명한 것 자체가 잘못된 인사였다는 주장이었다.

안 장관뿐만 아니라 다른 인사에서도 이런 식의 경력 무시 경향이 짙다는 지적도 많았다. 공직사회에서 다단계 승진 과정을 거친 것 자체가 다양한 검증을 받았다는 뜻인데, 이를 종종 무시하다 보니 안 장관 같은 무리한 인사를 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한 중진의원은 이를 ‘김대중(金大中) 대통령 특유의 엘리트 기피 및 아웃사이더 중용 스타일이 낳은 부작용’이라고 표현했다.

당무회의를 주재하던 이회창(李會昌) 총재는 안 장관 사퇴 소식을 듣고 “제대로 된 조치이다. 앞으로 이런 실수가 되풀이되어선 안된다”고 말했다.

또 김기배(金杞培) 사무총장은 “당연지사이며 사필귀정이다. 늦게나마 다행이다”고 말했고, 이재오(李在五) 원내총무는 “더 이상 국민을 불안하게 하지 말고 (후임 장관은) 국민이 동의할 수 있는 인사를 하기 바란다”고 말했다.

권철현(權哲賢) 대변인은 논평에서 “안 장관 파동은 대통령의 오기 정치, 오기 인사가 빚은 참사”라며 “이는 능력과 자질보다는 충성심과 정권재창출 효용성만을 염두에 둔 인사를 한 탓”이라고 비난했다.

그는 이어 “김 대통령은 이번 파동을 계기로 공직 인사 시스템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점 점검에 나서야 한다”며 “권력 나눠먹기용인 오장섭(吳長燮) 건설교통부장관 등 문제 장관에 대해서도 과감한 결단을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송인수기자>is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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