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美에 대화 수정제의]'경제난 해결' 속내 드러내

  • 입력 2001년 6월 18일 18시 50분


북한 외무성 대변인의 담화는 북측이 미국측의 협상 의제에 대한 분명한 거부 의사를 표명했지만 일단 대화에는 응할 의지가 있음을 밝힌 것이라 할 수 있다.

북측이 대화 의제를 수정해 ‘경수로 건설 지연에 따른 보상 문제’를 제기했지만 이는 전체적으로 볼 때 북-미 제네바 합의와 공동 코뮈니케의 이행을 촉구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북측은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이 북측에 넘긴 ‘대화 재개 선언’이라는 공을 되받아 넘겼지만, 양측이 대화 자체를 부정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북-미 협상은 조만간 재개될 공산이 크다.

북측의 이번 반응은 6일 부시 대통령의 대북정책 성명 및 13일 잭 프리처드 한반도평화회담특사와 이형철(李衡哲)유엔대사간 뉴욕 준비 접촉을 지켜본 뒤 내놓은 것이라는 점에서 북측도 장기간 대미 협상 전략 및 카드를 마련해 왔다고 볼 수 있다.

이는 미측이 협상 의제로 제시한 △핵문제 △미사일 검증 및 금수 △재래식 군사위협 완화 등에 대해 전력 손실 보상이라는 실무적인 문제로 ‘맞불’을 놓은데서 드러난다. 특히 이 문제는 제네바합의의 약속 이행 문제를 거론한 것이라는 점에서 미국도 마냥 무시할 수 없는 것.

통일연구원 허문영(許文寧)연구위원은 “북한이 전력 손실 보상이라는 한가지 중심 의제를 강조한 것은 심각한 경제난을 해결하기 위해 대화가 필요한 속사정을 나타낸 것”이라고 분석했다.

과거 북-미 대화 때면 자신들의 입장을 애매모호하게 한 뒤 지루한 협상 과정을 통해 의제를 만들어 내던 것과는 확연히 다른 태도라는 것이다.

고유환(高有煥·북한학과) 동국대교수는 “북한이 과거 미국측과 체제 보장 문제를 협의하는데 주력했던 것과는 달리 이번에는 구체적인 의제를 제시했다는 점에서 실용주의적이며 현실적으로 접근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북-미대화의 주변 여건은 성숙됐지만 실질적인 협상이 쉽지만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북한 외무성 대변인 담화는 한편으로는 미국이 제시한 의제와 협상자들의 레벨이 너무 낮다는 불만을 간접적으로 표시한 것이기 때문.

서동만(徐東晩) 상지대교수는 “외무성 대변인이 제네바합의와 북-미 공동 코뮈니케를 언급한 것은 핵문제 및 미사일문제라는 의제에 있어서는 과거에 진행했던 고위급 채널을 상기시킨 것”이라며 “현재의 낮은 레벨에서는 미국과 협상을 더 이상 진행하기 어렵다는 점을 간접적으로 시사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서교수는 “현재로서는 북-미 대화가 재개되더라도 의제를 논의하는 회담이 될지, 아니면 다른 회담을 만들기 위한 회담이 될지 불분명하다”고 덧붙였다.

<김영식기자>spear@donga.com

▼북한 외무성 대변인 담화 요지▼

1.미국의 조-미대화 재개 제의는 유의할 만하지만 그 진의도는 각성하지 않을 수 없다.

2.미국측은 전제 조건없이 협상을 재개하자면서도 서로 마주앉기도 전에 협상 의제를 일방적으로 정했다. 그 의제란 우리의 핵 미사일 상용무력과 관련한 것들로서 우리를 무장 해제시키려는 목적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3.이런 의미에서 미 행정부의 대화 재개 제안은 일방적이고 전제조건적이며 적대적이다.

4.미국이 진정으로 대화할 의지가 있다면 조-미 기본합의문과 조-미 공동 코뮈니케의 합의사항을 이행하기 위한 실천적 문제들을 의제로 삼아야 할 것이다.

5.우리의 상용무력은 미국과 그 동맹 세력의 위협에 대처한 자위 수단으로서 남조선에서 미군이 물러가기 전에는 논의의 대상이 될 수 없는 문제이다.

6.조-미 기본합의문의 이행과 관련하여 가장 급선무는 경수로 제공 지연에 따른 전력손실 보상 문제로서 협상의 선차적 의제로 설정되어야 한다.

7.미국측은 우리에 대한 적대시 정책을 포기하며 당면한 전력손실 문제를 논의 해결할 정치적 의지가 있는가에 대한 우리의 의문을 풀어주어야 한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