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세탁방지법 표류]다시 원점으로…무산 위기

  • 입력 2001년 6월 19일 18시 47분


당초 정부가 제출한 자금세탁방지 관련법안에는 규제대상에 정치자금이 포함돼 있지 않았고 여야는 국회 재경위 심사과정에서 아무런 이의 없이 정부안을 통과시켰다. 시민단체 등이 정치자금을 규제대상에 포함할 것을 촉구하면서 이 법안은 새로운 논란에 휘말렸고, 세 번째 합의 번복소동을 빚게 됐다. 그러나 여야의 속내는 이 법의 규제대상에 정치자금을 포함시키느냐 여부에 있지는 않은 것 같다.

▼관련기사▼
- 정치권 또 이기주의 돈세탁 방지법 표류

▽민주당〓민주당은 법 제정 취지를 본질적으로 훼손하지 않는다면 빨리 타협을 보겠다는 방침이다. 여기에는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자금세탁방지 비협력국가(NCCT)’로 몰리는 상황을 피해보겠다는 의도가 크게 작용하고 있다고 관계자들은 말한다.

민주당이 ‘본질적 부분’으로 여기는 것은 금융정보분석원(FIU)에 최소한 국세청 등 다른 기관이 갖고 있는 계좌추적권 정도를 부여해야 한다는 것. 한 관계자는 19일 “FIU에 계좌추적권을 주지 않으면 불법자금의 세탁을 막을 장치가 없어 법 제정 취지가 무색해진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이 법의 규제대상에 정치자금을 포함시키는 문제에 대해서는 유연한 자세를 보이고 있다. 즉 이 법의 규제대상에 정치자금을 넣어도 좋고, 아니면 정치자금법에 자금세탁 금지와 처벌조항을 신설해도 좋다는 것이다.

민주당은 이날 한나라당의 방침 번복을 전해듣고 ‘한나라당이 FIU의 계좌추적권을 최소화, FIU 기능을 사실상 무력화하려는 의도가 아니냐’며 촉각을 곤두세웠다.

▽한나라당〓19일 한나라당 총재단회의의 결론은 ‘정치자금을 규제대상에 포함시키되 문제가 된 정치자금은 선관위에 통보토록 하고 선관위는 해당 정치인에게 10일 이내에 사후통보토록 하자’는 것.

즉 FIU는 각 금융기관으로부터 세탁혐의가 있는 자금에 관한 정보를 통보받더라도 자체적으로 계좌추적을 할 수 없도록 하고 관련 수사기관이나 조사기관에 바로 넘기도록 하자는 것이었다.

제1정조위원장인 최연희(崔鉛熙) 의원은 “금융실명제법상 계좌추적을 허용하는 경우는 법원의 영장이나 세무조사 등 극히 제한적일 뿐 그 이외는 전혀 허용이 안된다”며 FIU에 대한 계좌추적권 부여의 부당성을 설명했다.

한나라당은 계좌추적권이 자칫 야당의 돈줄을 죄는 데 악용될 수 있다고 의심하고 있다. 이회창(李會昌) 총재 주변에서는 내년 대통령 선거와 연관짓는 얘기들도 흘러나오고 있다.

이 총재의 한 측근은 “FIU에 계좌추적권이 부여될 경우 내년 대선을 앞두고 어떤 일이 벌어질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라며 “우리가 반발하는 것은 FIU의 계좌추적권이 ‘야당흔들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김정훈·윤종구기자>jnghn@donga.com

▼FIU란▼

FIU는 금융정보분석원(financial intelligence unit)의 영문 약자. 이는 금융기관으로부터 조직폭력 마약 외화도피 등 범죄와 관련있는 자금이라고 의심되는 금융정보 자료를 넘겨받아 이를 분석해 관련 기관에 제공하는 기능을 하는 기구이다.

FIU는 불법 금융 거래와 관련한 계좌를 추적할 수 있고 관련 기관에 자료 제출을 요청할 수 있으나 수사권은 없다. 업무의 중립성 및 독립성 확보를 위해 야당이 한때 위원회 형태의 조직을 주장하기도 했으나 여야 합의로 재정경제부 산하에 두기로 했다.

FIU는 현재 미국 등 53개국에 설치돼 있으며 국제협력체계를 갖추고 있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