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는 이번 사건의 주요 성격이 지금까지의 ‘돌출적 사건’에서 남북한의 민간 교류협력을 악용한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으로 바뀌었다는 의미를 갖는다. 사전 교신 여부 등에 대한 수사결과에 따라서는 향후 남북관계와 정국 흐름에 엄청난 파장을 불러올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공안당국의 수사는 범민련 연석회의 참석사건과 만경대 방명록 및 기념탑행사 참가사건 등 크게 두 가지로 진행중이다.
▽범민련 사건〓범민련 관계자 5명이 8월16일 북측 인사들과 연석회의를 개최했다는 사실은 함께 방북했던 국가정보원 관계자들이 현지에서 확인한 ‘사실’이라고 검찰은 밝혔다. 결국 수사의 최대 쟁점은 이들이 방북승인을 받기 전 북한측과 ‘사전 연락’을 했는지 여부다.
‘사전 연락’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이를 사전에 파악해 막지 못한 정부의 책임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또 관련자들에게는 민간교류를 핑계로 계획적인 이적행위를 했다는 비난과 함께 국가보안법상의 잠입탈출 및 회합통신 혐의가 적용될 수도 있다.
이와 관련해 검찰 관계자는 이들이 사전에 북측의 ‘지령’을 받은 사실이 포착된 것처럼 오해될 수 있는 발언을 했다가 황급히 정정하기도 했다. 국정원이 5명의 국가보안법 위반혐의에 대해 수사하고 있다는 사실은 21일 오후 4시경 서울지검 수사관계자의 브리핑 과정에서 처음 밝혀졌다. 이 관계자는 김포공항에서 연행된 16명 중 누구는 경찰이 수사하고 누구는 국정원이 수사하는가에 대한 질문에 “국정원이 그동안 관심을 가지고 보아온 사람을 수사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또 “그쪽이 이른바 ‘언더(Under)’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아니겠느냐”고 덧붙였다.
이 관계자는 “검찰이 98년 문규현(文奎鉉) 신부에게도 잠입 탈출혐의를 적용했다가 무죄로 드러났다”는 지적에 대해 “처음부터 북쪽의 ‘지령’을 받고 간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령’이란 표현이 엄청난 충격으로 받아들여지는 듯 하자 이 관계자는 2시간 후 “일반적인 가능성을 이야기한 것이며 이번 사건에서 지령이 있었다는 말은 아니었다”고 정정했다.
▽만경대 방명록 등 사건〓만경대 방명록 작성자인 동국대 사회학과 강정구(姜禎求·56) 교수와 조국통일 3대 헌장 기념탑 행사 참가를 주도한 인물 등 11명에 대한 조사는 경찰이 진행중이다.
검찰은 강 교수에 대해 “그런 역사적인 행동(방명록 서명)을 하면서 ‘만경대 정신’ 운운이라고 쓴 것이 아무 의미도 없다고 볼 수 없다”며 “상징적인 의미를 파악할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은 강 교수의 행위가 국가보안법상의 ‘찬양 고무’에 해당하는지에 대해 조사할 것으로 보인다.
기념탑 행사 참가자의 경우 검찰은 일부 주동자들이 방북 전에 참가 모의를 했는지에 대해 집중 조사할 방침이다. 21일 오전에만 하더라도 다소 신중한 자세를 보이던 검찰 등 공안당국의 분위기는 범민련 사건이 알려진 오후 4시 이후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급반전됐다.
<신석호기자>kyl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