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북단 입국장 충돌]향군단체 회원들 계란 던져

  • 입력 2001년 8월 21일 18시 38분


保-革 주먹다짐
保-革 주먹다짐
“환영합니다. 고생하셨습니다.”

“북한으로 돌아가라.”

21일 오후 3시40분경 평양 ‘8·15 민족통일대축전’에 참가했던 남측 대표단이 김포공항 입국장에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전혀 상반된 두 목소리가 이들을 맞았다. 공항 제2청사 제1출입문 좌우에서 이들을 기다리던 통일연대 등 재야단체 소속 인사들과 재향군인회 등 보수단체 소속 인사들은 서로 질세라 구호를 외쳐댔다.

“김정일(金正日) 하수인들이 이 땅에 왜 오나. 줏대 없는 통일부는 평양정권 앞잡이인가.” “통일의 문을 온 몸으로 열어젖힌 방북단을 환영해요.국가보안법철폐하라.”

양 진영이 들고 나온 플래카드의 문구도 대조적이었다.

보수 진보의 대결은 구호에만 그치지 않았다. 남측 대표단이 참가단체별로 간단한 환영식을 가진 뒤 출입문을 나서자, 재야단체 회원들은 박수로 격려했으나 향군 여성회원들은 대표단을 향해 계란 20여개를 던졌다.

이에 앞서 민화협, 통일연대, 7대 종단 관계자 등 300여명(경찰 추정)은 오전 11시경부터 꽃다발과 플래카드를 들고 나와 공항 제2청사 제2출입문 앞에서 사전 환영집회를 가졌다.

반면 재향군인회, 6·25전쟁 참전용사 기념사업회 회원 등 600여명은 이들과 10여m 떨어진 청사 4, 5 출입문 앞에서 방북단 규탄대회를 벌여, 공항 주변엔 시종 일촉즉발의 긴장된 분위기가 감돌았다.

“미친 ×들이….”

“아버지 같은 사람에게 무슨 말이냐.”

오후 2시경엔 재야단체 소속으로 보이는 20대 여성과 재향군인회 소속으로 보이는 중년 남성이 언쟁을 벌이다 중년남성이 20대 여성의 머리채를 잡아당기는 바람에 주변 사람들이 몰려들어 격한 몸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또 활빈단 대표인 홍정식(洪貞植)씨는 ‘대한민국 입국사절, 평양으로 돌아가라’는 구호가 적힌 푯말을 메고 “(남측 대표단에게) 바퀴벌레 약을 뿌려주겠다”며 살충제를 들고 청사 안까지 들어왔다가 재야단체 소속 청년들에게 밀려났다.

이 밖에도 통일연대 소속의 20대 청년이 청사 제4출입문 앞을 지나다가 재향군인회 회원들에게 멱살이 잡히는 봉변을 당하는 등 청사 앞 인도 곳곳에서 양측의 충돌 장면이 목격됐다.

이날 치열한 남남 대결의 현장을 지켜본 한 공항관계자는 “갈가리 찢어져 있는 우리 사회의 현주소를 보는 것 같아 씁쓸하기 짝이 없다. 마치 역사의 시곗바늘이 거꾸로 돌아가는 듯한 착각이 든다”며 이맛살을 찌푸렸다.

청사를 빠져나온 남측 대표단의 한 관계자는 “북한에서 혼란과 시행착오로 인해 불미스러운 일들이 있었지만, 이런 상황이 벌어질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최호원·김창원기자>bestiger@donga.com

▼[방북단 입국 표정]경찰등 1500여명 배치▼


8·15 평양 민족통일 대축전 행사 참가 남측대표단이 귀환한 21일 오후 김포공항엔 대표단 관계자와 환영 및 반대 시위행렬, 경비 경찰, 언론사 취재진 등이 뒤섞여 혼잡을 이뤘다.

○…이날 김포공항 출입국 검사대 부근에는 관계기관 요원과 사복경찰, 정복 여경 등 500여명이 곳곳에 대기, 대표단을 맞았다. 검사대에서는 통로를 2개 열어 개별 심사를 했으며, 당국이 문제가 있다고 본 인사들은 곧바로 통과시키지 않고 관계기관 요원 3∼4명이 달라붙어 공항사무소로 인도했다.

공항측에서 짐 검색을 강화하는 바람에 짐이 제때 나오지 않았으며 당국은 이상 징후가 있는 짐에 대해서는 노란색 리본을 붙여 별도 심사를 했다.

이날 경찰은 양측의 물리적 충돌 등 불상사를 막기 위해 12개 중대 1000여명을 김포공항에 배치했으며 일부 문제 인사들을 서울경찰청으로 곧바로 연행하기 위해 별도로 사복경찰을 보세지역 안에 배치했다.

○…검사대를 통과하는 과정에서 첫 임의동행자가 발생했다. 법무부 출입국검사소 앞에서 대표단 가운데 첫 임의동행 요구를 받은 천영세 변호사(민주노동당 사무총장)는 요원들에게 “나는 변호사”라며 실랑이를 벌이기도 했다.

천 변호사에 이어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 소속 양승희(강원대) 학생,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 남측본부의 김규철 부의장 등이 잇따라 연행됐다. 이에 일부 통일연대 소속 대표들은 “우리만 빠져나갈 수는 없다”며 항의하는가 하면 연행에 나선 요원들과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통일연대의 김동균 변호사는 “우리가 기자회견을 한 뒤 순순히 조사를 받겠다는 의사를 밝혔는데도 적법한 영장도 제시하지 않고 격리하는 것은 불법”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앞서 남측대표단은 당초 예정보다 3시간 가량 늦은 오후 1시5분경 아시아나항공 전세기 2대에 나눠 평양 순안공항을 출발, 1시간을 조금 넘긴 오후 2시10분경 김포공항에 도착. 기내에서는 서울 도착 후 서명자 동행 및 일부 보수단체들의 시위가 있을 것이라는 소식을 둘러싸고 대표단 구성원들 간에 우려 섞인 대화가 오가기도 했다. 남측추진본부 집행부의 한 인사는 “정면 돌파하겠다”며 자신감을 드러냈지만 대부분의 대표들은 “처벌이 능사냐”며 불만을 드러내는 모습이었다.

<송진흡기자>jinhu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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