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한 참석자는 임동원(林東源) 통일부장관 문제로 고심 중인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최근 심경을 이렇게 전했다. 그러나 이런 전언조차도 몹시 조심스러웠던지 최고위원들은 공식회의가 끝난 뒤 방을 옮겨 ‘보안조치’를 취한 뒤 별도의 간담회를 가졌다. 자칫 김 대통령의 심경이 잘못 전달되면 또 다시 JP를 자극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간담회 참석자들이 전하는 김 대통령의 심경은 다음과 같다.
‘김 대통령은 임 장관이 대북정책에 관한 한 ‘DJ의 분신’이기 때문에 집착하는 게 아니다. 김 대통령은 임 장관 문제가 잘못 처리될 경우 남북관계를 6·15 남북정상회담 이전으로 되돌리는 ‘민족사적 후퇴’로 귀결될지 모른다고 판단하고 있다. 김 대통령은 특히 9, 10월을 남북관계의 교착상태를 타개해 나갈 수 있는 결정적 시기로 보고 있다.’》
김 대통령은 특히 9, 10월 중 자신의 유엔방문과 한미정상회담, 북-미회담 재개, 장쩌민(江澤民) 중국 국가주석의 북한 방문 등을 앞두고 임 장관을 사퇴시킬 경우 모든 게 헝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는 것. 29일 강원도 업무보고가 끝난 뒤에도 김 대통령은 주위사람들에게 이 같은 상황을 설명하면서 “다시는 이런 기회를 만들 수 없는데…”라는 말을 되풀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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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무보고에 배석했던 민주당 이해찬(李海瓚) 정책위의장은 “지금 북한은 강경파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대남정책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김정일(金正日)-장쩌민 회담 등을 앞두고 있다”며 “이런 시기에 우리가 경솔하게 임 장관을 경질하면 북한은 이를 정책선회 신호로 받아들일 게 분명하다”고 말했다. 김 대통령의 생각을 전한 것이었다.
이 의장은 또 자민련 김종필(金鍾泌) 명예총재가 29일 자민련 의원들과의 만찬에서 6·25 때 전사한 육사동기생들의 얘기까지 꺼내면서 임 장관의 자진사퇴를 요구했다는 얘기를 전해듣고는 “이 민족의 운명이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우리 민족의 분단체제가 다시 30년 이상 연장되는 거지”라며 안타까워했다.
청와대 관계자들도 30일부터 일제히 같은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남궁진(南宮鎭) 대통령정무수석은 “한반도 평화유지라는 대명제에서 후퇴한다면 민족사의 불행이다”고 말했다.
<김창혁기자>ch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