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을 넘어〓유엔 가입 10년은 남북 모두에게 냉전의 상처를 씻을 수 있는 시간을 주었다. 정권의 정통성을 인정받기 위해 더 이상 유엔에서 표 대결을 벌일 필요가 없어졌다. 남북은 한반도에 존재하는 사실상의 2개의 국가가 됐기 때문이다.
유엔 가입에도 불구하고 남북은 수시로 적대감을 드러냈으나 적어도 동등한 자격으로 대화할 수 있는 토대는 마련했다.
북핵문제로 한때 심각한 위기상황을 맞기도 했지만 유엔가입이 아니었다면 한반도 평화문제를 다루기 위한 4자회담은 물론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유엔 가입은 그만큼 한반도의 긴장완화에 기여했다.
▽높아진 위상〓한국의 위상도 높아졌다. 유엔의 당당한 일원으로 제반 국제문제에 대해 의견을 말할 수 있게 됐다. 동티모르 평화유지군 참여는 격세지감을 느끼게 했다. 유엔의 원조를 받았던 나라가 유엔의 회원국으로 남을 도울 수 있는 나라가 된 것이다.
한국의 유엔 평화유지군 참여 실적 | ||||||||
대상 국가(지역) | 참여 규모 | 주요 임무 | 파견 기간 | |||||
소말리아 | 공병부대 252명 | 교량 및 도로 보수, 대민지원 | 93.7∼94.3 | |||||
앙골라 | 공병부대 198명 | 교량 및 도로 보수, 대민지원 | 95.10∼96.12 | |||||
앙골라 | 참모요원 6명 | 정전 감시 | 95.10∼97.2 | |||||
서부사하라 | 의료부대 20명 | 각종 의료지원 | 94.9∼현재 | |||||
인도·파키스탄 | 군옵서버 9명 | 캐시미르 분쟁지역 정전 감시 | 94.11∼현재 | |||||
그루지아 | 군옵서버 3명 | 압하지아와의 휴전협정 이행 감시 | 94.10∼현재 | |||||
동티모르 | 보병 419명, 참모요원 21명 | 동티모르 안정회복, 독립정부 수립지원 | 99.10∼현재 |
한국은 올해 유엔 정규예산의 1.318%인 1363만달러를 부담했다. 내년에는 1.866%를 부담한다. 이 정도 규모면 189개 회원국 중 분담금 부담 순위 10위가 된다.
한국은 84개 유엔직속기관 중 유엔경제사회이사회(ECOSOC), 유엔인권위원회(UNCHR), 유엔사회개발위원회(UNCSD), 구유고국제형사재판소(ICTY) 등 13개 기관의 이사국을 역임하고 있고 16개의 유엔전문기구 중에서도 유엔식량농업기구(FAO) 등 9개 기구에서 활동중이다.
유엔 및 유엔 관련 33개 국제기구에서 일하는 한국인은 207명에 이른다. 유엔 사무국 서열 3위인 아시아태평양 경제사회위원회(ESCAP) 사무총장인 김학수(金學洙) 전 외교부 국제경제담당 대사, ICTY 재판관 권오곤(權五坤) 판사, 국제해양법재판소(ITLOS) 재판관 박춘호(朴椿浩) 고려대 교수는 그 중 대표적인 인물들이다.
한국은 특히 유엔 가입 이후 유엔에서 치른 약 50차례의 선거에 출마해 91년 국제민간항공기구(ICAO) 이사국 선출 선거만 빼고 모두 이겨 100% 가까운 당선율을 자랑하고 있다.
▽유엔의 중심국으로〓향후 유엔의 과제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개편 △아프리카의 절대빈곤 퇴치 △유엔 평화유지활동(PKO) 강화 방안 등으로 집약된다.
이런 과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한국은 강대국과 약소국 사이에서 양자의 입장을 조정하는 ‘중재자’로서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지적들이 많다.
최근의 국제질서는 유일한 초강대국 미국을 중심으로 일극(一極)체제화하는 경향을 강하게 보이고 있다. 이런 추세 속에서 유엔과 같은 다자기구의 역할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한국을 비롯한 중간국가(middle power)들이 상호 이해와 협력을 통해 유엔이 변함 없이 국제적 공론의 장(場)이 될 수 있도록 끌고 나가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부형권기자>bookum9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