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언론플레이'에 청와대 곤혹

  • 입력 2001년 9월 25일 17시 14분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가 지난달 28일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에게 친서를 보냈으나, 청와대와 정부는 일본측의 요청에 따라 이를 비밀로 했던 사실이 25일 뒤늦게 밝혀져 논란이 일고 있다.

고이즈미 총리의 친서에는 △9월 유엔아동특별총회에서 김 대통령을 만나려 했으나 자신이 다른 일로 불참하게 된 것에 대한 유감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와 역사교과서 문제 해명 △빠른 시기에 정상회담을 갖고 제반 문제를 논의하자는 제의 등이 담겼던 것으로 알려졌다. 친서에 대한 비공개 지시는 청와대에서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당국자는 "일본측이 친서를 전달하면서 비밀로 해줄 것을 요청했고 이를 받아들였다"며 "일본 국내 정치상황상 공개가 어려운 측면이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고이즈미 총리의 친서 전달이 일본 내 우익세력 등에게 비판의 빌미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에 이를 배려해준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러나 정부 일각에서는 "상대국에는 비밀로 해달라고 해놓고 자국(自國) 언론에는 흘리는 일본의 전형적인 외교적 술책에 말려든 감이 없지 않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한 관계자는 "당시에는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과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로 반일감정이 거셀 때였다"면서 "국민감정은 아랑곳 하지 않고 일본정부의 입장만 배려했지만 결과적으로 한국정부만 일본 정부와 언론에 의해 놀아난 꼴이 되고 말았다"고 비판했다.

정부는 친서 전달 사실이 일부 일본 언론 등에 보도된 경위를 조사하고 있으며, 일본측이 공개한 것으로 확인되면 외교경로를 통해 강력 항의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부형권기자>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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