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전문가 정상회담 평가]양국관계 복원에 일단 전기

  • 입력 2001년 10월 15일 18시 35분


▼윤영관 서울대 교수(외교학과) ▼

김대중(金大中) 대통령과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 간 정상회담은 한일관계 복원에 의미가 있다. 이는 고이즈미 총리가 서대문 독립공원에서 한국 국민의 고통에 대해 반성하고 사과하는 마음을 밝히면서 진지하게 돌아봤다는 자세에서 보여진다.

김 대통령이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는 A급 전범의 합사문제라고 말한 데 대해 고이즈미 총리가 다른 방식으로 누구라도 부담없이 참배하는 제3의 방안을 모색한다고 밝힌 것도 일본의 진전된 자세를 보여준다.

또 일본 역사교과서의 근린제국조항을 배려한다고 밝혔다는 것은 한 단계 진전으로 보인다. 이는 제도적으로 국가가 역사적 기술부분에 관여할 여지를 남긴 것으로 해석된다.

이번 정상회담의 특징은 한일 간의 감정적이고 민감한 문제들에 대해 일본측이상당히 실용적(practical)으로 접근했다는 점이다. 다만 꽁치어장 문제 등은 다소 시간을 두고 풀어가야 할 문제로 보인다. 역사공동연구기구를 설치하자는 문제 등은 과거에도 비슷한 제안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 일본은 비교적 실리적으로 접근했다는 점에서 이번 회담을 계기로 앞으로 관계 복원의 실마리를 어떻게 풀어나가느냐가 중요한 과제가 되고 있다.

이번 회담의 성사과정에서 우리 측이 양국 현안에 감정적으로 접근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는 점을 느꼈다. 회담 성사 배경에 일본과 중국 간의 협상 진행이 크게 작용했다는 점에서 주변국의 관계 복원 움직임에 대한 우리 측의 위기의식을 읽을 수 있다. 우리의 의지를 단호히 보여주면서도 여운을 남겨놓아야 상황이 바뀔 때 우리의 명분과 입장이 손상되지 않으면서 관계를 풀어갈 수 있다.

▼오코노기 마사오 日 게이오대 교수(한국정치)▼

주어진 조건 하에서 한일 양국 정부는 관계 회복을 위해 최대한의 노력을 했다. 한국측에 감정적인 반발이 남겠지만 한일관계를 ‘재출발’시키지 않고는 양국은 월드컵 공동개최라는 국제적인 책임을 수행하지 못할 것이며 국제테러조직의 도전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없다.

개인적으로 나는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의 야스쿠니(靖國)신사참배를 실패로 여긴다. 그러나 일본 국내 사정이나 자민당 사정상 현 시점에서 고이즈미 총리가 내년에 참배하지 않겠다고 약속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고이즈미 총리가 ‘새 방안’을 거론한 것은 큰 진전이다. 또 역사에 관한 공동연구기구 설치 합의도 높이 평가할 수 있다.

그 이상으로 나는 고이즈미 총리가 서대문 독립공원에서 말한 내용에 주목한다. 일부 오해가 있는 것 같지만 “(한국인이 받은) 고통은 상상을 초월한다”는 표현은 한국을 처음 방문해 과거 역사에 접한 사람의 솔직한 표현이다.

역사에 깊은 관심을 가진 고이즈미 총리는 방한 전 일본의 대표적인 여류작가인 쓰노다 후사코(角田房子)의 ‘민비 암살’을 읽었다. 이 책은 근대 한일관계사에 관한 최선의 저작 중 하나다.

또 담화를 ‘명심할 것이 있다’고 매듭지으며 한일 우호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힌 대목은 고이즈미 총리의 정치 스타일로 볼 때 경시할 수 없다.

아직도 고이즈미 총리는 한일 관계를 ‘학습’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한국방문은 대단히 좋은 기회였다.

이를 계기로 고이즈미 총리의 한국에 대한 인식이 깊어진다면 ‘작은 재출발’이 ‘큰 성공’의 토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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