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밤 여권 내에서 급속히 퍼진 외유설에 대해 동교동계는 “권 전 최고위원을 밀어내려는 또 다른 음모”라며 흥분하고 있다. 현재로선 일단 쇄신파쪽 최고위원 진영을 의심하는 분위기지만 확증은 없는 상황.
이와는 달리 여권 핵심인사가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을 위한 ‘충정’에서 권 전 최고위원의 외유설을 흘렸을 가능성도 있다. 실제 김 대통령이 브루나이에서 귀국한 직후 외유설이 퍼지자 권 전 최고위원 측은 ‘김심(金心)’이 반영된 간접 메시지일지 모른다는 점에서 매우 긴장했다.
권 전 최고위원의 외유에 대해 청와대 내에도 긍정적 반응이 적지 않고, 일부 인사는 이를 적극 건의한 흔적도 있다는 점에서 외유설은 아직 ‘꺼지지 않은 불’인 셈이다. 여권 핵심 인사들도 상황이 아직 가변적이라는 데 동의하고 있다.
권 전 최고위원이 한때 ‘자발적 외유’를 검토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이런 식으로라면 못 간다. 자의에 의해 공부하러 가야지 남이 나가라고 해서 떠밀려 나가면 공부가 되겠느냐”는 그의 언급을 뒤집어보면 모양새가 갖춰지고 명분이 주어진다면 못 갈 것도 없지 않느냐는 쪽으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아무튼 권 전 최고위원 진영은 물론 권 전 최고위원과 가까운 이인제(李仁濟) 최고위원 측도 “진상을 조사해 외유설을 흘려 당내 혼란을 가중시킨 장본인이 드러나면 처벌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어 여진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권 전 최고위원은 자신이 결심하지도 않은 외유설이 여권 내에서 제기된 것으로 알려지자 “절대로 강제로 쫓겨나는 인상을 줄 수는 없다”며 비장한 각오를 보였다. 그러나 당초 8일 기자회견을 갖고 “당당히 입장을 밝히겠다”고 밝혔던 그가 갑자기 기자회견 일정을 9일로 연기해 청와대 측과 어떤 물밑 조율이 있었던 게 아니냐 하는 관측을 불러일으켰다.
다음은 문답 요지.
-미국에 가나.
“누가 가라고 해서 가느냐. 내가 가고 싶으면 가는 것이다. 이제 상황이 이렇게 된 이상 안 가겠다.”
-조지타운대에서 초청장이 온 것은 사실 아닌가.
“평소 알고 지내는 고려대 모 교수를 통해 8월15일 조지타운대에서 초청장이 온 것은 사실이다. 잠시 검토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언제 갈 것인지 결정하지 않았고, 대학 측에 통보도 하지 않았다. 그 프로그램은 6개월에서 1년 정도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연구하는 것이었다.”
-연구를 위해 미국에 갈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이런 식으로 밀린다면 최소한의 명예조차 회복할 수 없다.”
-왜 외유설이 나왔다고 보나.
“누가 의도적으로 흘린 것 같다. 이런 내용이 어떻게 외부로 나갔는지 모르겠다.” -일본에서 열리는 자서전 출판기념회에는 가는가.
“이미 잡혀 있던 일정이다. 13일경 갔다가 17, 18일경 귀국할 것이다.”
<윤영찬·정용관기자>yyc1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