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극약처방으로 민주당 내에서 잠시 숙연한 자성의 분위기가 조성됐지만 오히려 ‘경선 논의 억제 효과’를 발휘했던 김 대통령의 존재가 사라지면서 민주당은 본격적인 경선 국면에 돌입했다.
특히 ‘쇄신파-동교동계’의 대결 구도는 박지원(朴智元) 전 대통령정책기획수석비서관의 사퇴로 쇄신의 명분이 크게 약화되면서 ‘이인제(李仁濟)파’ 대 ‘반(反) 이인제파’로 급속히 재편되고 있다. 동교동계와 이인제 계보가 한 축이라면 한화갑(韓和甲) 정동영(鄭東泳) 김근태(金槿泰) 전 최고위원 등이 ‘쇄신연대’의 세(勢)를 재규합하면서 대칭축을 형성하며 세 결집에 나서고 있다.
양측의기싸움은우선전당대회 시기를 놓고 첨예하게 벌어지고 있다.
한화갑 전 최고위원은 9일 당 체제 정비를 위한 1월 전당대회를 주장하고 나섰다. 1월 전당대회에서 당원의 총의를 모아 총재를 선출한 뒤 나중에 후보를따로뽑자는것.쇄신파가 ‘선(先) 체제 정비’를 요구하는 데는 현 한광옥(韓光玉) 대표 체제의 친(親) 동교동 성향에 대한 불안감의 표현이자, ‘당권 장악이 우선돼야 향후 경선 본게임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할 수 있다’는 계산을 깔고 있다.
하지만 대의원 수를 결정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쇄신파 내에서도 이해가 갈라질 가능성이 엿보인다. 정동영 전 최고위원의 ‘10만 대의원 증원’ 주장에 대해 한 전 최고위원측이 뚜렷한 의사 표명을 유보하고 있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반면 이 전 최고위원측과 동교동계는 3월 전당대회개최-후보선출 쪽으로 세를 모아가고 있다. 이 전 최고위원측의 계산은 쇄신파 3인방의 계산과는 정반대다. 비(非) 적대적 세력이 당권을 유지하는 상황에서 본선(本選)이 바로 치러지기를 희망하는 것이다. 하지만 한 대표와 이 전 최고위원의 관계는 앞으로 각종 변수에 따라 바뀔 소지가 크다. 우선 ‘총재의 권한’이라는 막강한 힘을 부여받은 한 대표로서는 자신의 임기가 단명(短命)에 그치는 것을 바라지 않을 것이 분명한 만큼 막상 결정적인 분기점에 이르렀을 때 방침을 어떻게 설정할지 예단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 같은 각 세력간의 복잡한 함수관계 때문에 당내에서는 쇄신파나 이 전 최고위원측에게 있어 ‘당권-대권 분리론’은 마지막 순간에 합종연횡의 성사를 위해 유효한 숨겨둔 카드가 될 수 있을 것이란 관측이 설득력 있게 나오고 있다.
아무튼 민주당의 내분 양상은 김 대통령의 총재직 사퇴 이후 쇄신 논의에서 전당대회 시기 결정문제로 각 세력의 노골적인 이해가 보다 분명하게 드러나는 방향으로 급속히 움직여 가고 있다.
<윤영찬기자>yyc1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