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이 정부와의 정책 조정에 적극 나서기로 한 것은 최근 급변한 정치 지형 때문이다. 즉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민주당 총재직을 사퇴한 뒤에도 정부와 여당 간의 당정협의가 계속되기는 하겠지만, 그 영향력이 예전 같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에 따른 것이다.
또 10·25 재·보선 후 국회 의석 과반수(137석)에 딱 1석 모자라는 거야(巨野)가 된 한나라당으로서는 국정에 대해서도 그만큼 부담을 느끼고 있다.
한나라당은 이미 여야 합의로 운영하고 있는 여-야-정 정책협의회를 피하고 정부측과 직접 대화 채널을 가동할 방침이다.
당의 한 관계자는 “여권이 여-야-정 정책협의회를 정례화하는 방안 등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고 있으나, 우리는 운영방식에 상당한 문제점이 있다고 생각한다”며 “그동안 정부측은 여-야-정 협의회를 초당적 협력 방안보다는 야당의 반대가 분명한 쟁점을 처리하는 창구로 활용해 왔다”고 덧붙였다.
그는 “그동안 당내에서 ‘당 지도부가 여-야-정 협의회에 가서 말려들기만 하고 과연 얻은 것이 무엇이냐’는 비판이 많이 제기돼 왔다”고 전하기도 했다.
한나라당은 정부측과의 접촉을 통해 정부가 추진 중인 5조원 규모의 사회간접자본 투자비 증액 움직임에 제동을 거는 한편 △교원정년 63세 연장 △건강보험 재정분리 △남북관계법 개정 등을 밀어붙일 계획이다.
그러나 김 의장이 “무척 미묘한(delicate)한 문제”라고 말했듯이, 한나라당의 고민도 없지 않다. 이회창(李會昌) 총재가 민생과 경제 회복과 관련해서는 초당적 협력의사를 밝힌 만큼 정부측을 무조건 몰아붙일 수도 없기 때문이다. 이 총재와 김 의장이 최근 복지예산 폭을 놓고 의견 차이를 보인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주요 정책 현안에 대한 소속 의원들의 의견조정 문제도 넘어야 할 산이다. 건강보험 재정분리 당론의 국회 상임위 표결을 앞두고 김홍신(金洪信) 의원이 반대의사를 굽히지 않고 있다. 교원정년 연장 방침에 대해서도 당 교육위원들 간의 의견이 통일돼 있지 않다.
<정연욱기자>jyw1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