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방송위원 9명 중 3명을 추천토록 돼있는 대통령 추천지분을 아예 없애자니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까 걱정되고, 대통령 추천지분을 줄이는 타협책을 모색하자니 자민련측이 반발하는 진퇴양난의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20일 국회 문화관광위 소속 한나라당 의원들의 회의에서도 간사인 고흥길(高興吉) 의원이 마련한 두 가지 방안을 놓고 논란을 거듭했으나 끝내 결론을 내지 못했다.
첫째 안은 자민련이 주장하는 방안으로 대통령 몫 없이 의석 비율로만 방송위원을 추천하는 방안. 이 경우에는 민주당이 4명, 한나라당이 4명, 자민련이 1명씩 추천권을 갖게 된다. 그러나 이 안을 채택할 경우 문제는 대통령이 ‘행정기구 성격의 방송위를 여야 정당이 정치 기구로 이용하게 된다’는 이유로 개정법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한나라당 내에서도 대통령 추천 몫을 백지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견해가 다수다.
둘째 안은 대통령 추천 몫을 2명으로 줄이는 절충안. 이 방식대로 하면 방송위원은 대통령이 2명, 민주당이 3명, 한나라당이 4명씩 추천하게 된다. 따라서 정부 여당 추천권이 늘어나 대통령의 거부권은 피할 수 있으나 자민련 추천 몫이 없어진다는 게 문제.
이날 회의에서는 궁여지책으로 “방송법을 개정하면서 자민련에 한나라당 몫 4명 중 1명의 추천권을 양보하겠다는 정치적 약속을 하자”는 의견도 나왔으나 “법적 보장이 아닌 만큼 자민련의 동의를 얻기 힘들 것”이라는 반론이 많았다. 결국 회의는 정부와의 방송정책 협의 절차를 포함, 종합적인 개선방안을 마련해 다시 논의하기로 하고 결론 없이 끝났다. 이 같은 분위기 때문에 이번 회기 내 개정안을 통과시키겠다는 한나라당의 당초 결의는 다소 주춤해진 듯한 느낌이다. 한 참석자는 “가능한 한 정기국회 회기 내에 법개정을 추진하겠지만 경우에 따라선 내년으로 늦춰질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송인수·김정훈기자>is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