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년 8월 북한측이 발사한 대포동 미사일이 일본 열도를 넘어 미사와(三澤) 동북방 580㎞지점의 태평양 공해상에 떨어졌을 때 일본에서는 “국민이 심리적 공황에 빠졌다”는 말이 나왔을 정도로 큰 충격을 받았다. 일본 전역이 북한 미사일의 사정거리에 들어간다는 사실이 증명됐기 때문이다.
이 사건 직후 일본 정부는 “일본 안보에 대한 중대한 위협”이라고 논평하며 북한과의 전세기 운항을 중단했다. 또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에 분담금을 내서는 안 된다는 주장도 나왔다.
북한의 대포동 미사일 발사는 북-일 국교정상화 교섭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줬으며 일본의 군비 강화 주장의 빌미가 되기도 했다. 일본은 러시아 대신에 북한을 일본의 ‘최대 가상적’으로 간주하고 미일 신방위협력지침(신 가이드라인)을 통해 북한에 대한 대비태세를 강화했다. 또 4기의 첩보위성 발사와 대테러 특수부대 창설 계획의 근거가 되기도 했다.
북한의 미사일 개발문제는 그 후 국제적 관심의 표적이 됐다. 북한과 미국은 4차례의 미사일 회담과 윌리엄 페리 대북정책조정관의 북한 방문, 미국의 대북 경제제재 완화 등의 조치를 거쳐 99년 9월 북한이 실험발사 유예를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한편 이번에 벌어진 소동은 우리측이 미사일 실험발사시 발사 각도를 정상보다 높였기 때문에 일본측이 발사 초기 레이더에 포착됐던 탄도를 기준으로 계산했던 예상 사거리가 실제 낙하지점보다 훨씬 길게 나왔기 때문에 빚어졌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결국 사거리가 100㎞라는 우리측의 공식 발표가 나간 뒤 일본은 무관을 통해 우리나라 국방부에 “계산이 잘못됐다”는 입장을 공식 통보해왔다.
<도쿄〓심규선특파원·성동기기자>kssh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