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대북정책을 ‘동북아평화’ 차원에서 ‘세계안보’ 차원으로 끌어올리려 할 경우 한국정부의 목소리도 작아질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부시의 언급은 적지 않은 파장을 몰고 올 것으로 전망된다.
▽부시의 대북 메시지〓부시 대통령의 발언은 대량의 생화학무기를 보유한 것으로 알려진 북한에 대해 “속히 사찰에 응해야 한다”는 강한 메시지를 던진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이 발언은 최근 미국의 한반도 연구자들이 북한에 대해 심상치 않은 발언들을 계속 내놓고 있는 가운데 나온 것이어서 예사롭지 않다.
정부 내부에선 박길연(朴吉淵) 신임 유엔주재 북한대사가 현지에 부임할 경우 북-미간 뉴욕채널이 활발하게 가동될 것으로 내심 기대했었다. 그러나 최근 존 볼튼 미 국무차관이 공개적으로 북한의 생화학무기 개발 능력을 문제삼고 부시 대통령까지 북한에 대량파괴무기 사찰을 요구하고 나서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분위기다.
따라서 부시 대통령의 언급이 대(對)테러전쟁 이후 새롭게 형성되는 국제질서의 규범을 북한이 준수해야 한다는 ‘경고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도 해석된다.
다른 한편으로는 부시 대통령이 6월 북한과의 대화재개 의사를 밝히면서 제시한 재래식무기 외에 대량살상무기라는 의제를 추가한 것으로도 해석된다. 이로 인해 미국의 재래식무기 협상 제안에 발끈하고 있는 북한을 한 걸음 더 뒤로 물러나게 만들 가능성도 없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관측이다.
▽북-미 관계 전망〓부시 대통령의 언급은 기본적으로는 부시 행정부 출범 이후 세워둔 북한과의 대화원칙을 재삼 강조한 것이라는 게 정부측 평가이다.
통일부 당국자는 27일 “부시 대통령이 일단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위해서’라는 전제조건을 붙였다는 점에서 원론적인 북-미 대화 원칙을 강조한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도 9·11 테러발생 직후 반(反)테러 의사를 밝히는 등 국제사회의 흐름에 동참하는 모습을 보였다는 점에서 한반도의 안보 지도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북한 외무성대변인은 3일 ‘테러자금지원 금지’ 및 ‘인질억류방지’ 등 반테러국제협약에 가입키로 결정했다고 밝히는 등 국제사회의 변화기류에 조심스럽게 동참하는 모습을 보였기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지금은 미묘한 시점이라는 점이다. 남북관계마저 정체된 시기에 나온 이 같은 부시 대통령의 언급은 실질적으로는 북한을 움츠러들게 할 가능성이 크다.
외교통상부 당국자는 “이라크와 북한의 대량파괴무기 개발 문제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내비쳐온 공화당 정부 내 매파의 목소리가 커지는 게 걱정스럽다”며 “북-미 관계가 상당기간 암흑기에서 탈출하지 못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영식·이종훈기자>spea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