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계개편 밀사역 할까〓정치권에서는 박 특보의 재기용을 정계개편과 연결시켜 해석하는 시각이 많다.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박 특보에 대한 일반의 비판여론은 물론 여권 내의 반발을 무릅쓰고 그를 다시 부른 것은 임기말 정국 운영과 관련한 보다 큰 그림을 그리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에 근거한 것이다.
여권 고위관계자가 “김 대통령이 그동안 여야를 막론하고 피차 큰 정치를 이해하고 대화할 필요성을 느꼈던 게 사실”이라고 말한 것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된다.
박 특보의 청와대 복귀가 자민련 출신 신국환(辛國煥) 산업자원부장관의 재기용 및 DJP 공조 와해 후 처음인 DJP 회동과 맞물려 이뤄진 점도 정계개편과 관련한 의혹을 증폭시키는 요인이다.
그렇지 않아도 민주당과 자민련 민국당 주변에선 신(新)3당 합당 등의 정계개편 논의가 무성하다. 정치감각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박 특보가 여권 내의 정계개편 논의가 지향하는 바를 모를 리 없을 것이라는 점에서 한나라당은 청와대의 은밀한 정치개입 가능성을 미리 경계하고 있다. 이에 박 특보는 “나는 오히려 정계개편을 하지 않으려고 청와대에 들어가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들도 “박 특보는 오히려 한나라당과의 원만한 관계 설정을 통해 김 대통령의 임기말을 원활하게 관리하고자 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왕 특보’ 체제의 청와대〓김 대통령의 민주당 총재직 사퇴 이후 지금까지 청와대는 비교적 정치에서 초연한 자세를 유지해왔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박 특보의 복귀로 불가피하게 정치적 논란에 휩쓸릴 소지가 많아졌다.
이상주(李相周) 전 대통령비서실장이 29일 개각 명단을 발표하면서 박 특보를 ‘정치 특보’로 잘못 지칭한 것이 박 특보 체제의 색깔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일 수 있다.
이번 개편을 통해 짜여진 청와대 진용 자체가 박 특보의 정치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것 같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사실 새 청와대 진용의 인적 구성상 박 특보의 정치적 역할 확대는 필연적인 상황이다.
전윤철(田允喆) 대통령비서실장은 경제관료 출신인 만큼 정치와 국정운영 전반을 챙기기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데다 조순용(趙淳容) 정무수석이나 박선숙(朴仙淑) 공보수석 등 정치 분야 수석비서관들과 박 특보의 긴밀한 관계 때문이다.
박 특보의 정치적 역할이 커질수록 그동안 박 특보에 대해 알레르기성 거부감을 보여온 민주당 내 쇄신파 진영의 박 특보에 대한 공세가 거세질 가능성이 크다. 그와 함께 김 대통령의 정치 불개입 선언도 의미가 퇴색할 것으로 보인다.
윤승모기자 ysm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