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부시 대통령의 대북 경고는 내달 19일 방한을 앞두고 이뤄졌다는 점에서 북-미 관계는 물론 한미 관계에도 미묘한 파장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이 대북 강경 입장을 고수한다면 그의 방한을 계기로 북-미 대화를 촉구하려는 한국 정부의 구상이 차질을 빚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부시 대통령이 이날 테러 지원 및 비호 국가로 북한을 제일 먼저 거론한 뒤 이란 이라크와 함께 ‘악의 축(axis of evil)’이라고까지 규정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국의 적이었던 ‘추축국(樞軸國·독일 일본 이탈리아)’을 연상시킬 만큼 강한 표현이다.
미국이 북한 등 3개국을 이른바 ‘불량국가’로 지목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하지만 부시 대통령이 취임 후 첫 연두교서에서 지속적인 테러와의 전쟁 의지를 강조하며 이례적으로 강한 톤으로 비난한 것은 예사롭지 않다.
북한 등이 대량파괴무기 개발과 테러 지원을 계속하는 한 9·11 테러세력과 같은 범주로 분류하겠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물론 백악관 측은 부시 대통령의 이 같은 경고가 미국의 2단계 테러전쟁의 목표와 연관시키는 것은 무리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하고 있지만 그의 대북 불신이 어느 정도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조지프 리버맨 미 상원의원(민주)은 폭스TV와의 회견에서 “부시 대통령은 3개국에 대해 분명한 경고를 준 것”이라며 “부시 대통령의 계획을 알지는 못하지만 이들 국가는 걱정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부시 대통령의 대북 인식이 전혀 변화가 없다는 것이 명백해진 만큼 내달 한미 정상회담에서 양국이 대북 정책의 접점을 찾기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부시 대통령으로서는 한국 정부의 대북 포용정책에 대한 이해 표명보다는 ‘테러리즘의 근원적 억제’에 우선 순위를 두고 있음을 이번 연두교서에서 분명히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부시 대통령의 대북 강경 발언은 차세대 전투기(FX) 사업에서 한국측의 양보를 이끌어 내기 위한 것이 아니냐는 일부 시각도 있다.
부시 행정부 출범 이후 사실상 단절된 북-미 대화의 재개도 당분간 기대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북한의 대량파괴무기와 테러 지원을 문제삼는 것에 대해 북한은 ‘체제를 압살하려는 책동’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워싱턴〓한기흥특파원 eligiu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