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에서 남으로, 남에서 북으로, 그리고 다시 북에서 남으로 돌아온 탈북자 유태준(劉泰俊)씨의 행적은 마치 영화 ‘빠삐용’의 주인공을 연상시킬 정도다. 유씨의 13일 기자회견을 토대로 그의 재입북 및 탈북과정을 재구성해 봤다.
▽재입북 및 체포〓2000년 6월9일 정착지였던 대구를 떠난 그는 중국 지린(吉林)성에 도착한 뒤 조선족과 북한 국경수비대 군인 등을 통해 아내 최정남씨의 소식을 접했다. 같은 달 25일 함흥 처갓집을 찾아가 사흘간 근처를 떠돌던 그는 장모가 “국가안전보위부에 신고하겠다”고 소리치는 바람에 아내 만나기를 포기하고 무산행 기차에 올라탔다.
무산에서 두만강을 건너려던 그는 30일 보위부원들에게 붙잡혔다. 작년 1월15일 평양 보위부 감옥 안에서 열린 즉석 재판에선 10분 만에 그에게 32년형이 선고됐다. 그는 작년 3월 청진 보위부 정치범교화소로 옮겨졌다가 작년 5월30일 북측의 강요에 의한 기자회견 녹화를 마친 뒤 평양 보위부 감옥으로 다시 옮겨져 탈출할 때까지 있었다.
▽재탈북 과정〓유씨는 작년 11월10일 평양 보위부 감옥에서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 전기철조망이 쳐진 담을 넘어 탈출했다. 그는 이어 평남 순천역에 숨어 들어가 무산행 열차의 지붕 위에 올라탔다. 길주역에 도착하기 전 열차 지붕에서 뛰어내린 그는 인민군 한 명을 때려눕힌 뒤 군복으로 갈아입고 도망쳤다.
그는 같은 달 30일 보천보전투 기념탑이 서 있는 압록강 상류 양강도 혜산에서 국경을 넘어 중국 땅으로 들어섰다. 그러나 아내를 찾아 서울로 가기 위해 자신만이 아는 비밀장소에 파묻었던 여권과 돈은 온데간데없었다.
▽중국에서의 체포 및 서울 송환 과정〓중국으로 탈출한 유씨는 작년 12월3일 옌지(延吉)시에서 중국 공안당국에 붙잡혔다. 중국 공안당국은 그를 족쇄에 채워 두 달 동안 구금했다. 끝까지 한국인임을 주장했던 그는 중국 공안당국의 추방조치에 따라 이달 9일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한 직후 관계당국에 자진신고, 이틀간 조사를 받았다.
그러나 작년 3월 유씨의 처형설이 보도된 뒤 ‘조사 중’이라는 답변만을 내놓던 관계기관의 합동신문은 유씨의 탈북경로 등에 대한 간단한 조사만 한 뒤 가족에게 그를 넘겨줘 탈북자의 신변안전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유씨는 누구인가〓함경남도 함흥에서 석탄판매소 지도원으로 일하던 유씨는 98년 11월 세 살배기 아들을 데리고 탈북한 뒤 대구에 정착했다. 2000년 2월에는 자신보다 먼저 탈북했으면서도 한국에 입국하지 못했던 어머니 안정숙씨와 남동생도 입국해 서울에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나 유씨는 남북 정상회담으로 화해 분위기가 한창이던 재작년 6월 북한에 남아 있는 아내를 데려오기 위해 중국에 간 뒤 소식이 두절됐다. 그가 10개월간이나 소식이 끊기자 탈북자들 사이에서는 한때 ‘공개처형설’까지 나돌았다.
김영식기자 spea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