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정상회담/對北 메시지]"美,北 대화테이블 유도 쉽지 않을듯"

  • 입력 2002년 2월 20일 18시 38분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20일 한미정상회담에서 ‘조건 없는 북-미 대화’를 거듭 강조함에 따라 북한도 어떤 형태로든 남북 및 북-미 관계에 대한 입장을 정리한 뒤 그 방향을 구체화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직면했다.

그러나 북한은 일단 북-미 대화보다는 남북 대화 재개에 우선 순위를 둘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더욱이 부시 대통령의 언급이 구체적인 대화 전략이라기보다는 포괄적인 미국의 대북정책 목표 제시에 가까워 실제 북한을 대화의 테이블로 끌어들이는 데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얘기다. 특히 부시 대통령은 북한 지도부에 대해 “주민의 기아는 방치한 채 대량살상무기 개발에만 집착하고 있는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정권”이라고 정면으로 겨냥했다.

동국대 고유환(高有煥·북한학과) 교수는 “북한은 미국이 대량살상무기 확산 및 미사일 수출 중지에 목표를 두고 있는 만큼 미국과의 대화에 나서면 현재로서는 얻을 것보다는 잃을 것이 더 많다고 판단할 것 같다”고 북-미 대화에 부정적인 견해를 밝혔다.

그 대신 북한은 실무 차원의 남북적십자 대표 접촉을 통해 이산가족 상봉을 출발점으로 해 대북지원 논의를 위한 2차 경협추진위원회 개최로 옮아가면서 손쉬운 문제부터 접근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특히 이산가족 상봉은 부시 대통령이 거듭 강조한 사안이란 점에서 미국에 대한 유화 제스처의 의미 외에도 대외 이미지 개선에 도움을 줄 것으로 판단할 가능성이 높다.

통일연구원 허문영(許文寧) 연구위원은 “북한이 대선에 앞서 현 정부와 어느 정도 남북관계의 틀을 만들어 놓을 필요가 있다는 판단 아래 남북 당국간 대화에 호응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그러나 최악의 경우 북한이 모든 대화 제의를 거부하고 한반도 주변의 정세를 악화시키는 종래의 ‘벼랑끝 전술’로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고려대 유호열(柳浩烈·북한학과) 교수는 “북한이 지도부와 주민을 분리시킨 부시 대통령의 언급을 불쾌하게 받아들여 미국과의 대결 국면으로 방향을 잡게 될 경우 한반도 정세의 불안정 상태가 장기화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고 전망했다.

김영식기자 spe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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