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장애인에 헌납' 약속 깼다

  • 입력 2002년 3월 4일 18시 06분


정치 지도자의 ‘약속’은 그것이 아무리 오래전에 했던 것일지라도 훗날 반드시 검증 받아야 한다. 하물며 대통령에까지 오른 지도자가 한 약속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최근 한나라당과 아태평화재단 사이에 오가고 있는 ‘부동산 공방’은 일차적으로 김대중(金大中) 대통령 측에 해명과 수습의 책임이 있다고 본다.

한나라당은 엊그제 “1992년 11월 14대 대선 직전 당시 김대중 민주당 대표는 이희호 여사 명의로 된 서울 영등포구 소재 대지 119평과 경기 화성시 소재 잡종지 903평을 장애인을 위한 공익법인 설립에 헌납하겠다고 공언했으나 모두 거짓이었다”고 주장했다. 청와대와 문제의 땅을 증여 받은 아태재단 측은 이에 ‘정치공세’라며 반박했다.

문제는 이 같은 야당의 주장이 사실무근이 아니라는 데 있다. 김 대통령은 1992년 11월19일 문제의 두 땅을 ‘장애인을 위한 공익법인 설립에 헌납하겠다’고 말했고, 이는 당시 언론에 보도됐다.

아태재단 관계자는 ‘이 땅이 아태재단에 증여됐으니 만큼 공익법인에 증여하겠다는 약속을 지킨 것 아니냐’고 했지만 이는 궁색한 변명일 뿐이다. 아태재단의 영문 명칭은 ‘The Kim Dae-Jung Peace Foundation’이다. 아태재단은 스스로를 ‘한반도 평화와 인권 및 민주주의 발전을 위한’ 공익법인이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이 재단이 김 대통령의 퇴임 후 활동을 위해 설립된 단체라는 것은 명칭에서부터 드러나 있다. 그런 점에서 ‘장애인을 위한 공익법인’에 대한 증여와 아태재단에 대한 증여를 동일시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약속을 깬 것은 사실 아닌가.

1992년 언론 보도에 따르면 당시 영등포 땅만 해도 시가 25억원에 달한다고 돼 있으나 아태재단 측은 두 땅의 매각대금이 14억5000만원이라고 밝힌 것도 납득하기 어렵다. 이렇듯 비상식적인 부분들에 대한 김 대통령과 아태재단의 명확한 해명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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