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선자금 문제로 홍역을 치르고 있는 민주당 상황을 바라보며 한나라당의 한 고위관계자가 한 말이다. 97년 당시 신한국당 경선도 ‘8룡(龍)’이 접전을 벌인 데다가 경선전이 ‘돈선거’ 공방으로 얼룩졌기 때문인 듯 했다.
당시 경선에 참여한 이홍구(李洪九) 전 국무총리는 “도저히 돈이 없어 경선을 못하겠다”고 고백할 정도였고, 박찬종(朴燦鍾) 전 의원도 “모 후보가 두 명의 원외지구당 위원장에게 조직활동비 명목으로 5000만원씩 전달했다”고 폭로하며 후보직을 중도 사퇴하는 등 시비가 끊이지 않았었다.
당시 한 후보 진영에 참여했던 인사는 “김영삼(金泳三) 당시 대통령의 장악력이 떨어진 상태에서 각 후보 진영이 독자적으로 자금을 모았던 것으로 알고 있다”며 “단기필마로 뛰었던 최병렬(崔秉烈) 의원을 제외한 다른 후보들은 정도 차이가 있지만 대략 수십억원씩 사용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력한 후보 진영에서는 지역별 책임자들에게 몇 차례에 걸쳐 수백만∼수천만원의 ‘활동비’를 지원했다는 게 당시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또 경선일(1997년 7월21일)이 임박할수록 활동비 단위가 올라갔다는 후문이다.
심지어 유력한 모 후보 진영이 모 재벌로부터 수백억원의 자금 지원을 받아 전체 지구당에 돈을 뿌렸다느니, 어떤 후보 진영은 호남지역의 한 위원장에게 수억원을 제의했으나 거절당했다느니 하는 얘기가 공공연하게 나돌기도 했다.
그러나 당시만 해도 정치권에선 이를 관행처럼 여겨 특별히 문제되지는 않았다. 당시 이회창(李會昌) 후보는 당 선관위에 기탁금 1억원을 포함해 1억5000만원을 사용했다고 신고했다.
정연욱기자 jyw1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