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랍자 전국 명단이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돼 있었음에도 6·25전쟁 관련 단체가 이를 찾아내 공개할 때까지 관계당국은 “없다”로 일관했으며 발견 후에도 “소관 업무가 아니다”는 이유로 자료정리조차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피랍자 가족들은 납북된 부모 형제를 찾기 위해 8만2000여명에 이르는 명단을 일일이 대조해야 하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자료를 공개한 6·25전쟁납북인사가족협의회(이사장 이미일·李美一)는 7일 “지난 2년여 동안 수 차례에 걸쳐 통일부 등 관계 당국에 피랍자 명단을 찾아줄 것을 요구했지만 ‘없다’는 답변만 들었다”고 밝혔다.
협의회는 또 “명단이 없다면 양식을 만들어 신고라도 받아줄 것을 요구했으나 그간 실무자가 3번이나 바뀌도록 아무런 답변이 없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통일부는 지난해 12월 서울시 피랍자 명단이 발견될 때까지 이런 자료가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으며 명단 발견 이후 자료정리, 보상, 명예회복 등은 행정자치부 소관이라며 책임을 미루고 있다.
통일부 관계자는 “업무로 보면 전쟁 이후 피랍자는 통일부 관할이지만 전쟁 중 납치는 당시 내무부, 지금은 행자부가 맡아야 하지 않느냐”며 “그러나 행자부도 이런 일을 처리할 관련 부서는 없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문제는 명단이 주소지별로 구별돼 있어 현재로서는 8만2000여명의 이름을 일일이 확인하는 것 외에는 신원을 확인할 방법이 없다는 점.
현재 남은 가족들이 대부분 피랍자의 자녀 또는 손자들일 정도로 세월이 지나 정확한 당시 거주지, 소속 및 지위, 납치일시와 장소 등을 기억하기 힘들다는 점도 신원 확인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이 때문에 협의회 측은 많은 인력과 비용, 시간이 소요되는 데이터베이스화에 정부가 나서줄 것을 요구하고 있으나 부처간의 책임 공방으로 상당한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조부가 전쟁 당시 피랍됐다는 김모씨(36)는 “자료가 전부 한자인데다 시 군까지의 주소지로만 구별돼 있어 일일이 다 뒤지기 전에는 찾을 방법이 없다”며 “자료 정리라도 정부가 해줘야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협의회 이 이사장은 “사무실에 한 부를 비치했지만 가족들이 신원을 확인하기에는 역부족”이라며 “명단 발견 이후에도 관계당국에서는 전화 한통 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진구기자 sys120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