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문에 정치권 안팎에서는 “틀림없이 무슨 일이 날 것”이란 관측이 분분했다. 하지만 그가 국민회의 측의 축재의혹 폭로로 96년 3월 구속될 때까지도 청와대나 상도동 관계자들의 일관된 반응은 “뜬소문”이라거나 “그럴 리가…”라는 것이었다.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30여년 동교동(東橋洞) ‘집사’인 이수동(李守東) 전 아태재단 상임이사를 둘러싸고도 현 정권 출범 얼마 후부터 그가 인사 및 민원 청탁의 주요 통로 중 하나란 소문이 재계 주변에서 만만치 않게 나돌았다.
한 중소기업인은 “현 정부 출범 후 민원 청탁을 위해 이런저런 루트를 찾다가 이씨의 라인을 소개받았다”며 “당시 정가(定價)까지 정해져 있다는 얘기를 들었으나 개인 사정 때문에 결국 포기한 일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가 각종 인사로비를 벌인 사실까지 속속 드러나고 있는데도 청와대와 아태재단 측은 아직껏 “개인적인 일”이라는 반응이다.
더욱이 너무나도 ‘닮은꼴’인 두 사람의 사례에서 재미있는 공통점은 “이들이 사실은 호가호위(狐假虎威)했을 뿐”이라는 대통령 주변사람들의 평가다. 대통령의 입장에서 볼 때 그저 ‘전화당번’이나 ‘심부름꾼’에 불과한 사람들에게 너무 큰 정치적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는 항변일 것이다.
하지만 새삼 되풀이할 필요도 없이 권력이란 권력자와의 ‘거리’와 만나는 ‘빈도수’에서 나오는 것이라는 게 고금의 진리다. 권력이 절대적일수록 더더욱 그렇다.
참고로 이씨의 전력을 조금 더 살펴보면 그의 영향력의 원천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김 대통령의 영국유학기간 중에도 동교동 자택을 지켰던 이씨는 충직함 때문에 현 정권 출범 당시 청와대 총무비서관에 내정됐었다. 그러나 노령(당시 66세)이란 이유로 마지막 단계에서 청와대 입성 대열에서 배제된 대신 아태재단을 관리하는 역할을 맡아 수시로 관저를 드나들게 됐다는 게 동교동 관계자들의 얘기다.
따라서 권력이 있다고 믿는 곳에 돈과 정보가 모이고, ‘파리떼’가 끓듯 사람이 꾀고, 그렇기에 더욱 힘이 있는 것처럼 보이려는 악순환이 계속되는 정치판에서, 그의 존재를 사람들이 착안한 것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닌 셈이다.
심지어 일각에서는 “여당 중진들조차 그를 통해 DJ에게 메시지를 전하기도 했다”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같은 맥락에서 대통령 아들이 재단이사장으로 있고 영문에 대통령 이름까지 명기된 아태평화재단(The Kim Dae-Jung Pe-ace Foundation)은 ‘권력기관’일 수밖에 없는 게 우리 현실이다.
문제는 이 같은 현상들이 이미 정권 운용에 ‘빨간 등’이 들어왔음을 말해주는 신호인데도 이를 애써 외면하려는 듯한 권력핵심부의 자세다. 그 근본원인이 핵심라인에 포진해 있는 특정지역 인맥이나 야당식의 ‘패거리’ 의식 때문에 의도적으로 권력의 환부(患部)를 서로 감춰주려는 데서 비롯된 결과라면 ‘도덕 불감증’ 못지않게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동관 정치부 차장 dk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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