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12일에는 일부 초 재선 의원들까지 측근정치의 비판에 가세하자, 이를 계기로 그동안 잠복하고 있던 ‘이회창 체제’의 각종 내부 갈등요인들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는 양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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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사태의 배경엔 이 총재의 당 운영스타일에 대한 불만이나 당내 노선 갈등과 같은 근인(近因) 못지않게 장기적으로는 정계개편 움직임이나 대선 이후의 당권 향배 등 원인(遠因)도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 총재도 다각적인 수습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李총재 비판…“사소한 당무까지 일일이 관여”
▽이 총재의 당 운영 스타일〓이 총재에 대한 비주류나 소장파의원들의 불만은 기본적으로 당 운영 스타일에서 비롯한다. 사소한 당무에 지나치게 관여하는가 하면 주요 현안 결정은 손을 빼고 당직자들에게 넘겨 공연한 시비를 낳는다는 지적이 많다. 바로 이 때문에 이 총재도 모르게 측근정치가 발호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만제(金滿堤) 의원은 “이 총재가 당무에 하나하나 관여한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 “이제는 총재직을 버리고 당무는 부총재나 당3역 등에게 맡긴 채 대선에 전념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반면 한 고위당직자는 “이 총재가 실질적으로 당을 장악하고 있으면서도 대선후보 경선과 같은 중요한 문제에 대해서는 엄정 중립을 지킨다며 발을 빼 불필요한 잡음이 생겼다”며 “이 총재가 진작에 팔을 걷어붙이고 직접 현안을 챙겨 갈등을 조정했으면 박근혜(朴槿惠) 홍사덕(洪思德) 의원 문제는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고 말했다.
신영국(申榮國) 안상수(安商守) 이병석(李秉錫) 의원 등 희망연대 소속 의원들은 이날 모임을 갖고 “당내의 여러 지적을 겸허하게 포용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의견을 모았다.
▼거세진 공격…양정규-하순봉-김기배에 화살
▽측근그룹의 전횡?〓최병렬(崔秉烈) 부총재와 정형근(鄭亨根) 홍준표(洪準杓) 의원 등은 잇따라 측근정치를 비판하면서도 당사자들의 이름을 거명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당 관계자들은 대체로 양정규(梁正圭) 하순봉(河舜鳳) 부총재와 김기배(金杞培) 국가혁신위 부위원장을 지목하고 있다. 이른바 ‘측근 3인방’으로, 이들이 이 총재 주변에서 친위 세력을 형성해 당내 분열을 조장하고 이 총재에게 편향된 정보를 입력해 당과 이 총재를 독선적으로 끌고 간다는 것이 당내의 일반적인 시각이다.
박근혜 의원의 탈당 때도 주요 당직자들은 대부분 “어떻게 해서든 박 의원을 붙잡아야 한다”고 했지만, 일부 측근들이 “나갈 테면 나가라”는 식으로 대응해 결국 탈당사태를 맞았다는 것. 김원웅(金元雄) 의원은 “지난해 말 교원정년연장안을 밀어붙이려다 여론의 호된 질타를 받게 된 것도 일부 측근그룹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부총재 경선을 앞두고 측근들이 ‘이심(李心·이 총재의 의중)’을 내세워 지구당 위원장들 줄세우기에 나서고 있다는 불만도 팽배하다. 이에 하순봉 부총재는 “위원장들이 바지저고리인가. 당무에 관여한 정도로 따지면 나보다 최병렬 부총재가 더 책임이 있다”고 반박했다.
▼97년 측근들…백남치-김영일씨등 거리 멀어져
▽97년 대선 때의 재판?〓이 총재 측근정치는 97년 대선 때도 논란이 됐다. 양정규 하순봉 부총재와 김영일(金榮馹) 의원, 서상목(徐相穆) 변정일(邊精一) 백남치(白南治) 박성범(朴成範) 전 의원 등 이른바 ‘원내 7인방’이 비판의 표적이었다.
당시 김영삼(金泳三) 대통령의 민주계가 주류를 차지한 신한국당에서 이들 ‘7인방’은 이 총재의 대세론 확산에 공을 세운 뒤 대선캠프에서 영향력을 행사해 나가기 시작했고, 이때부터 당내에서는 “7인방이 당의 주요 의사결정을 독식한다”는 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하지만 이들 7인방도 대선 이후엔 행로가 엇갈렸다. 양정규 하순봉 부총재는 지금도 이 총재의 핵심 측근 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다른 의원들은 이 총재로부터 ‘팽(烹)’ 당하거나 등을 돌렸다.
97년에 기획위원장을 맡았던 서상목 전 의원은 ‘세풍(稅風)’사건에 연루돼 의원직을 사퇴했고, 백남치 전 의원은 16대 총선 공천에서 탈락한 뒤 이 총재 곁을 떠났다. 김영일 의원도 97년 대선 후 이 총재와 멀어졌다는 평이고, 16대 총선에서 낙선한 변정일 박성범 전 의원 또한 지금은 이 총재와 소원한 상태이다.
▼대공세 배경…비주류 17代 총선 길닦기 성격
▽비주류, 대선 후가 문제다〓비주류와 일부 중도파 중진들이 이 총재 측근 배제를 들고 나온 것은 대선 이후, 특히 차기 대통령 취임 이후 1년2개월 뒤에 치러지는 2004년 17대 총선을 겨냥한 ‘예비적 당권 투쟁’의 성격도 있는 듯하다.
한나라당이 대선 이후 당권-대권을 분리한 집단지도체제를 도입키로 함에 따라 ‘이 총재 이후’를 노리는 중진들로서는 5월10일 전당대회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기 위해 치열한 각축전을 벌이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일찍부터 하순봉 부총재와 김기배 부위원장, 최병렬 부총재와 강재섭(姜在涉) 부총재 등이 경선 선두를 차지하기 위해 막후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는 후문이다.
특히 측근그룹에서 소외된 의원들은 2004년 총선에서 살아남기 위해 무엇보다도 자신들의 공천을 보장받을 수 있는 당 지도부가 들어서기를 원하고 있어 이 총재 측근 배제에 심정적으로 동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경북 지역의 한 중진 의원은 “이 총재가 만약 대통령에 당선되면 당권-대권 분리나 집단지도체제도 유야무야될 게 뻔한데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겠느냐”고 당내 일각의 분위기를 전하기도 했다.
송인수기자 issong@donga.com
박성원기자 swpark@donga.com
정연욱기자 jyw1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