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규철칼럼]이제 다섯번째 창당인가

  • 입력 2002년 3월 13일 18시 22분


정치판이 안팎으로 급히 돌아가는 것을 보니 신당이 곧 나올 모양이다. 박근혜씨는 왜 그리 서둘러 한나라당을 탈당했는가. 김덕룡씨와 강삼재씨의 미묘한 언동엔 어떤 함의(含意)가 있는가. 민주당은 한번 내쳤던 마당발 김상현씨를 왜 다시 받아들였는가. 민주당 후보경선에 나선 한화갑씨는 왜 일찌감치 ‘중대결심’운운하며 한자락을 깔고 있는 것인가. 고건씨가 서울시장 재출마의사를 밝히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정몽준씨 이름은 왜 자꾸 거론되는가. 그리고 민주당내 김대중 대통령의 친위조직으로 알려진 ‘중도개혁포럼’은 왜 계속 정계개편론을 펴고 있는가. 포럼회장 정균환씨가 원내총무와 최고위원이 된 것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박근혜씨와 이수성씨는 이미 신당에 합의한 상태다.

▼신당과 ´보이지 않는 손´▼

정치는 생물(生物)이라 했고, 모든 정치상황은 언뜻 보면 하나하나 떨어진 것 같지만 실제로는 은밀히 엉켜 돌아가는 속성이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왜 하필이면 지방선거를 석달여 앞두고, 또 대통령선거를 9개월여 남겨 놓은 지금인가. 현정권집권 4년 동안엔 지금처럼 움직일 만한 사연이 없다가 요즈음에 와서 모든 사단이 한꺼번에 벌어졌단 말인가. 양대 선거를 눈앞에 두고 극적 효과를 노리는 다변(多邊) 파상작전이 벌어지는 형국이다.

그런데 현재 드러난 정황들을 종합해 보면, 궁극적인 목표는 지금까지 각종 여론조사결과에서 나타난 대권양강 이회창 대 이인제구도를 겨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당내 경선에서 이인제씨가 대통령후보가 됐을 경우와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이인제씨든, 다른 후보든 경선에서 민주당 대통령후보로 확정된다면 이들이 민주당을 떠날 이유는 만무하다. 그렇다면 민주당을 통째로 흔들어 버린다는, 아직은 드러낼 수 없는 무시무시한 속셈을 갖고 있는 세력이 있는 것 아닌가.

정신 바짝 차리고 들여다볼 대목이 있다. 창당목적으로 신당사람들은 어떤 순수하고 신선한 이유를 내세울 것인가. 신당추진은 자발적인가. 자신도 모르는 ‘보이지 않는 손’은 없는가. 그리고 결국 신당에는 어떤 면면들이 참여할 것인가. 이러한 질문을 던지는 이유가 있다. 과연 신당은 현 집권세력과 어떤 관계인가. 간판만 바꾸어 단 변형된 재집권시도가 아닌가 하는 의문이다. 얼마 전 청와대측은 이를 강력히 부인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의문을 쉽게 떨쳐버릴 수 없는 이유가 있다. 까놓고 말해서 정치적 기복 때마다 현상을 뒤엎어버렸던 김 대통령의 만만치 않은 창당경력 때문이다. 대통령은 당 문제에 개입하지 않는다 하지만 아직 당적은 갖고 있고, 무대 뒤에 있을 뿐이다. 운신이 더 편할지 모른다.

85년 2월 미국에서 돌아온 김 대통령은 87년 11월 13대 대통령선거와 국회의원총선을 앞둔 시점에서 평민당을 창당한 것을 비롯해 지금까지 15년 동안 모두 4개의 정당을 만들었다(민주당 91년 9월, 새정치국민회의 95년 9월, 새천년민주당 2000년 1월). 어림잡아 4년에 한번 꼴인 셈인데 공교롭게도 모두 대선과 총선을 앞둔 시기를 택했다. 92년 12월 14대 대선에서 패한 김 대통령이 정계은퇴 선언과 함께 영국으로 떠났다가 6개월후 귀국, 창당한 것이 새정치국민회의다. 그동안 몸담았던 민주당에서 신당추종세력을 이끌고 매몰차게 나서던 날, 서울시내 스위스그랜드호텔에서 밤늦도록 벌어진 격론의 회의장면을 아직도 기억하는 사람들은많다. 그날이 연상되는 것은 그때 민주당과 지금 민주당이 이름도 그렇고, 정치적으로도 비슷한 위치에 놓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예감 때문이다. 차츰 불거지는 민주당 경선 갈등이 내분으로 폭발할 경우 당의 진로에 치명적일 수 있고, 분가(分家)의 명분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김 대통령의 창당기록은 또한 선거를 6개월 내지 8개월쯤을 남기고 이루어졌던 일정한 경향을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이번 신당 출현시기는 4월에서 6월사이가 유력하다는 전망을 할 수 있고 실제로 그런 보도가 나온다.

▼선거때마다 ´창당변신´▼

신당이 집권세력과 관련이 있느냐 없느냐는 곧 드러난다. 적어도 지방선거 이후 그리고 대통령후보를 내세울 즈음엔 숨었던 면면들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 정치인들은 살아 남기 위해 손쉬운 사람들을 이리저리 끌면서 이합집산할지 모른다. 그래서 ‘정치 9단’이니 뭐니 하지만 과연 백성을 위한 정치 9단이었는가. 오늘날 정치의 내용이 왜곡되고, 정치의 질서가 무너지고, 정치의 규범이 사라진 것도 이 같은 뻔뻔스러움 때문이다. ‘무늬만 정계개편’이라면 신당은 혼란만 불러올 수 있다.

신당 뒤의 ‘보이지 않는 손’이나, 그 손에 미혹(迷惑)된 정치인들에게 한마디하고 싶다. 국민은 그렇게 어리석지 않다.

최규철 논설실장 ki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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