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NN과의 인터뷰〓이들은 대사관 진입 수시간 전 베이징 시내의 은신처에서 가진 CNN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에서는 인간의 가치가 없다”면서 “북한 당국이 내걸고 있는 무상치료와 무상교육 약속도 지켜지지 않고 있다”고 증언했다.
이들은 “살기가 너무 힘들어서 넘어왔는데 넘어와 보니까 북한에 속았다는 것을 알게 됐다”면서 “우리는 가다가 죽든지 북한에 잡혀가 죽든지 두 가지 경우 중에서 가다가 죽는 게 낫다는 생각을 하고 탈북을 시도했다”고 덧붙였다.
탈북자 중 한 명인 치과의사 유동혁씨(45)는 “북한은 창살없는 거대한 감옥”이라며 “우리는 사람이 아니었으며 짐승만도 못한 대우를 받았다”고 말했다.
탈북자들은 한국에 가서 가장 하고 싶은 일에 대해 “아이들을 공부시키고 배고프지 않을 만큼 안정된 직장에 다니는 것”이라고 답했다.
▽마닐라 체류 모습〓탈북자들은 중국에서 대사관 진입 때 쓰고 있던 ‘Beijing’이라는 영문글자가 새겨진 빨간색과 푸른색의 야구모자를 그대로 눌러쓴 채 다소 긴장된 모습으로 마닐라에 도착했다.
스페인 대사 및 한국 대사관 관계자들과 함께 기내에 직접 올라 탈북자들을 살펴본 로일로 골레스 필리핀 국가안보보좌관은 “마닐라의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탈북자들은 하나같이 중국에서 입었던 두툼한 옷을 그대로 입고 있었다”면서 “어른들은 그간 겪은 일로 긴장한 듯이 보였지만 어린이들은 기내를 돌아다니며 놀고 있었다”고 말했다.
탈북자들은 마닐라 도착 직후 서울행 일정이 확정되지 않아 다소 불안해했으나 서울입국 일정이 18일 오후로 확정됐다는 소식이 16일 전해지면서 빠르게 안정을 되찾았다.
이들은 마닐라 케손시 이귀날도 기지 내 군정보본부에 있는 안전한 장소에서 한국과 필리핀 정부의 철통경비 속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고 현지 관계자들이 17일 전했다.
관계자들은 “탈북자들 중 몇 명이 긴장이 풀리면서 피로감을 호소하는 것 외에는 이들의 건강에 전혀 이상이 없다”면서 “이들은 서울행에 필요한 관련 서류들을 작성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지난해 장길수군 망명 사건에 이어 또다시 탈북 망명자들을 맞이하게 된 필리핀 현지 언론은 이들의 체류사실을 비교적 상세하게 보도하는 등 큰 관심을 표명했다.
최대 부수를 자랑하는 ‘마닐라 불리틴’은 17일자 신문에서 탈북자들의 중국 추방과 마닐라 도착 사실을 1면에 게재했고 ‘필리핀 스타’지도 탈북자들이 현재 아키노공항 인근의 군시설에 수용돼 있다고 소개했다.
▽중국의 인권 문제〓중국 정부는 탈북자들을 사건 발생 하루 만에 필리핀으로 추방해 외교적 난제를 재빨리 해결했으나 이들의 난민지위를 인정하지 않아 인권 보호에 관한 한 여전히 취약한 면모를 보였다고 외교전문가들은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중국의 이번 조치가 신속한 인도주의적 해결책이기는 하지만 탈북자들의 난민 지위를 인정하지 않는 한 이 문제는 중국 정부에 큰 숙제로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지는 이와 관련해 15일 “역사적으로 대북 관계를 ‘입술과 이’만큼 가까운 관계로 여겨온 중국에 이번 결정은 매우 어려웠을 것”이라며 “중국이 이번 결정을 내리게 된 것은 18일부터 제네바에서 열리는 유엔인권위원회 회의를 앞두고 탈북자들을 북한에 강제 송환함으로써 국제사회의 여론을 외면하길 원치 않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정미경기자 micke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