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노벨상금 11억원의 행방

  • 입력 2002년 3월 20일 18시 09분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노벨상금으로 받아 아태평화재단에 기부했다는 11억여원에 대한 의문이 제기됐다. 월간 ‘신동아’ 4월호 보도에 따르면, 지난 1년여 동안 이 돈은 아태재단에 ‘기부’된 것이 아니라 김 대통령이 언제라도 돌려받을 수 있는 개인돈으로 ‘보관’돼 왔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최근 아태재단을 둘러싸고 갖가지 의혹이 끊이지 않는 터에 이런 의문까지 제기돼 국민을 헷갈리게 한다.

김 대통령이 노벨상금을 아태재단에 기부했다는 것은 2001년 1월 당시 언론에 보도됐고 관보에도 등재된 사실이다. 이 내용은 또 김 대통령의 2001년 및 2002년 공직자 재산변동 신고에도 기부된 것으로 반영돼 있다. 그런데 아태재단 회계장부에는 그 돈이 3월 현재까지 기부금이 아니라 ‘가수금’ 형태로 남아 있었다. 그렇다면 국민과의 애초 약속을 어긴 것이 분명하지 않은가. 가수금이란 대차대조표상 유동부채에 속하는 것으로, 아태재단과 같은 공익법인에서 가수금 계정을 만드는 것 자체가 매우 비정상적이라는 게 공인회계사들의 의견이다.

우리는 노벨상금이 이처럼 애매하게 처리된 것이 ‘고의’에 의한 것이라고는 믿고 싶지 않다. 노벨상금이 재단 예산에 뒤섞여 흐지부지되게 하지 않고 퇴임 후 대통령의 뜻에 따라 의미있는 일에 쓰이게 하기 위해서였다는 청와대측의 해명도 납득 못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경위야 어떻든 드러난 사실로만 보면 그와 같은 노벨상금의 처리는 떳떳지 못한 것이다. 얼마 전에도 김 대통령이 1992년 장애인을 위한 공익법인 설립에 헌납하겠다고 약속했던 서울 영등포 및 경기 화성시 땅이 실제로는 아태재단에 증여된 일을 놓고 논란이 있었다. 이런 일이 자꾸 반복되면 국민적 신뢰는 땅에 떨어질 수밖에 없다.

김 대통령의 2000년 노벨평화상 수상이 국민적 자긍심을 높여준 일이었다면 그 상금의 처리도 당초 대통령이 약속했던 대로 투명하게 이뤄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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