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은 특히 이 총재가 18일 밤까지 총재직을 내놓는 방안을 검토하다 갑자기 총재직 유지 쪽으로 돌아선 데 대해 노골적으로 불만을 드러내고 있다. 이런 기류를 알면서도 이 총재가 굳이 당권을 고수하려는 까닭은 무엇일까.
▽97년의 악몽〓이재오(李在五) 원내총무는 “이 총재는 97년 대선 때 당과 후보가 따로 놀았고, 이것이 패배의 주요 요인이었다고 생각한다. 후보인 자신은 전국을 누비며 최선을 다하는데, 대표를 포함해 당 조직은 그렇지 않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 총재는 97년 자신이 아들의 병역 면제 파문으로 곤욕을 치를 때 당시 당직자들은 사태 진화에 나서기 보다 후보교체론을 흘리며 당 내분 사태를 즐겼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게 측근들의 한결같은 얘기다. 이 총재가 당권에 집착하는 것도 이 때문이라는 것이다.
총재직을 내놓는 순간 당의 권력이 새 총재에게 쏠리게 돼 대선기간 중 후보가 위기에 처해도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을 것이라는 게 이 총재와 측근들의 시각인 셈이다.
김기배(金杞培) 의원은 “후보가 당권을 확보하지 않으면 지구당위원장들이 후보 보다는 총재의 눈치를 살피게 돼 선거운동이 일사불란하게 진행되지 않을 것”이라며 “선거를 앞두고 당권을 내놓는다는 것은 선거를 포기한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주장했다.
▽97년과 2002년의 차이〓그러나 반론도 많다. 97년 당시에는 이회창 후보를 대체할 대선 주자들이 당내에 즐비했지만, 올해는 이 총재를 대신할 후보가 없다는 것이다. 97년 대선과 2000년 16대 총선을 전후해 이 총재에 맞섰던 이한동(李漢東) 의원과 김윤환(金潤煥) 이기택(李基澤) 신상우(辛相佑) 전 의원 등은 모두 당을 떠났다.
한 중진의원은 “지금 당의 상황은 한마디로 ‘이회창 1인 천하’”라며 “97년 사정을 들어 이번에도 당권을 유지해야 한다는 이 총재측 주장은 앞뒤가 맞지 않는 얘기”라고 반박했다. 이부영(李富榮) 의원도 “올해는 누가 당권을 잡더라도 대선에서 ‘나 몰라라’ 할 수 없을 것이다”고 말했다.
이들은 또 “총재 경선이 과열될 수 있다”는 이 총재의 견해에 대해서도 “경선은 소강 상태 보다는 과열 상태가 차라리 낫다. 그래야 민주당의 대선 후보 경선에 맞서 당의 민주적 이미지를 고양할 수 있지 않느냐”고 반박했다.
▽측근들의 위기감〓이 총재가 당권 이양에서 당권 유지로 돌아선 데에는 측근들의 위기감이 작용했다는 말도 있다. 이 총재가 당권을 쥐고 있어야 측근들이 힘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이 총재의 기자회견 전날인 18일 밤 측근 인사들이 서울 가회동 이 총재 자택에 찾아가 이 총재의 마음을 돌렸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구(舊) 민정계 7인방이 가회동에서 심야 회의를 가졌다는 말도 있다.
그러나 이재오 총무는 “18일 총재단 회의에서 이 총재는 당권 유지와 당권 이양, 집단지도체제 즉각 도입 등 세 가지 방안을 제시했고, 참석자들은 이 총재가 어느 방안을 채택하더라도 총재 결정에 따르겠다고 합의했었다”며 “당권 유지는 이 총재 본인의 결정”이라고 해명했다.
송인수기자 issong@donga.com
정연욱기자 jyw1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