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후보를 제외하고는 모든 것을 포기하겠다는 선언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총재가 19일 기자회견에서 밝힌 수습안의 기본방향까지 뒤집으면서 당내 비주류 및 소장파들의 요구를 전격 수용한 것은 당 내분사태의 불길을 더 이상 방치할 경우 대선 본선도 위험할 수 있다는 절박한 상황 인식에서 비롯됐다.
또 민주당에서 불기 시작한 ‘노무현(盧武鉉) 돌풍’도 이 총재측을 자극했다. 한나라당의 텃밭인 영남권을 강타하기 시작한 ‘노풍’이 급기야 이 총재측의 대선 가도에 ‘빨간 불’을 켠 것이다. 이 총재의 측근들조차 이 총재가 당권에 집착하는 인상을 버리는 등 특단의 조치를 취하는 것만이 난국 타개의 해법이라고 건의했다는 후문이다.
이 총재가 이날 기자회견에서 “일반 국민 사이에서는 집단지도체제가 표본적인 정당 민주화의 원형인 것처럼 널리 알려져 있고, 마치 내가 당권에 집착하는 것 같은 인식이 퍼져 있어 총재직을 폐지하기로 했다”고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한 핵심당직자는 “총재는 19일 회견 직전에도 집단지도체제 즉각 도입 및 총재 불출마를 검토했으나 중진들의 반발에 부닥쳐 포기했다”며 “이번에도 중진들을 설득하기 위해 발표시기를 늦췄을 뿐”이라고 물밑 분위기를 전했다.
이 총재가 막판까지 고심한 카드는 총재 경선 불출마와 집단지도체제 도입 방안. 한 총재특보는 “총재직을 그대로 두고 경선을 하면 선출된 1인에게 당권이 집중되는 부작용이 우려된다”며 “따라서 권력 분점의 효과를 살릴 수 있는 집단지도체제가 차선책”이라고 말했다.
어찌됐든 이 총재측은 이번 회견을 계기로 20여일간 계속돼온 당 내분이 수습 쪽으로 가닥을 잡아나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일단 내분이 수습되면 곧바로 4월초 예정된 대선후보 출정식을 통해 집권 청사진을 제시하면서 본격적인 대선 국면에 돌입한다는 것이다.
다만 이 총재가 앞으로 총재직을 포기하는 대신 연말 대선 때까지 한시적으로 대표최고위원을 겸임할지 여부는 유동적이다. 이 총재측은 내심 일사불란한 대선 전열 정비를 위해 대선후보의 대표최고위원 겸임을 바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이 총재측은 측근정치 논란의 표적이 돼온 하순봉(河舜鳳) 김기배(金杞培) 의원 등의 최고위원 불출마를 기대하고 있지만, 불출마를 강요할 수도 없어 이들의 처리 문제는 좀 더 두고봐야 할 것 같다.
정연욱기자 jyw1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