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제-노무현 다시 충돌

  • 입력 2002년 3월 28일 18시 46분


민주당 이인제(李仁濟) 후보의 ‘경선 복귀’ 이후 처음 열린 28일 전북 지역 TV토론회에서는 예상대로 이 후보와 노무현(盧武鉉) 후보간에 불꽃 튀는 공방이 벌어졌다.

▽이념 논쟁〓이 후보는 작심한 듯 시종 노 후보를 ‘급진 좌파’로 몰아세웠다. 그는 노 후보가 88년 7월8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행했던 속기록과 89년 현대중공업 파업현장에서 한 강연 내용까지 들고 나와 읽어 내려가며 노 후보의 급진성을 부각시켰다.

이 후보가 읽은 노 후보의 대정부질문 요지는 ‘재벌은 해체돼야 한다. 재벌 총수와 그 일족이 독점하고 있는 주식을 정부가 매수해서 노동자들에게 분배하자. 매수와 분배 모두 20년 거치 20년 분할상환 정도면 노동자들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 집 없는 서민들, 중소상공인, 농민들을 위해서 부채 탕감과 아울러 토지는 모두 같은 방법으로 분배하자’는 것.

또 현대중공업 강연요지는 ‘법도 여러 가지가 있다. 밥 못 먹게 하는 법, 그것은 법이 아니다. 그러므로 법은 정당할 때 지키고 정당하지 않을 때는 지키지 말아야 한다. 경제 사회관계 법 등을 만들 때 이제 여러분의 대표가 이런 것을 만들어야 한다. 그게 바로 오늘 한국의 노동자가 말하는 노동자가 주인 되는 세상이다’는 내용.

이 후보는 이 내용을 인용해 “국회의원 신분이라면 과격한 분배 위주의 사회주의적 정책을 제기해도 심각한 문제가 아니지만 대통령은 국가의 운명을 좌우한다. 이래서야 외국 기업이 투자를 하겠느냐”며 선제 공격을 가했다.

노 후보는 “이념 공세는 일부 극우 언론과 한나라당, 군사 독재정권, 부당한 기득권 세력이 항상 써먹는 것이다. 한나라당의 공세에 빌미를 줄 수 있는데 왜 당 안에서 이를 써먹느냐”고 맞받아쳤다.

이 후보는 계속 “노 후보의 노선은 ‘급진 좌’로 계급 의식을 고취하고 선동하는 것이다”고 공격했다. 노 후보도 “문구 하나 떼어 공격하는 게 꼭 어디서 배운 것 같다”며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그는 “노동자 대표가 국회에 좀더 진출해야 과격하지 않게 국정에 참여, 타협의 문화가 만들어질 것으로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정계개편·음모론 논란〓이 후보는 “연기가 나오면 어딘가 불이 있고 그림자가 있으면 실체가 있는 것이다”며 음모론을 다시 제기했다. 그는 또 “후보가 되면 정권재창출에 나서야지 왜 후보를 던지고 이념 노선에 따라 정계 개편을 하겠다는 거냐”고 물었다.

노 후보는 음모론에 대해 “조선일보 김모 주필이 토론회에서 꺼낸 뒤 이 후보 진영과 한나라당에서 (이런 주장이) 나온다”며 “근거가 없다싶으면 그만해야지 왜 국민을 선동하느냐”고 역공을 폈다.

그는 정계개편론에 대해서는 정동영(鄭東泳) 후보까지도 “경선이 끝난 뒤 해도 되는 것 아니냐. 또 대선 이후가 시기적으로 맞는 것 아니냐”며 이의를 제기하자 “정계개편론을 놓고 논쟁하면 경선이 왜곡될 수 있다”며 한발 빼는 듯한 태도를 취했다.

▽지역주의〓이 후보는 대전 충남 지역 경선에서 몰표를 얻은 데 대해 “한번도 충청에서 지역주의 부추기지 않았다”고 말한 뒤 “영남후보론이 대체 뭐냐. 지역주의 극복하자면서 지역주의 부추기는 것 아니냐”며 거꾸로 노 후보를 겨냥했다.

노 후보가 “영남 출신이지만 영남후보론을 내세우지 않았다”고 반박하자, 이 후보는 노 후보의 팸플릿을 내보이면서 “양팔 저울의 한 추에 영남을, 다른 추에 충남과 호남을 올려 놓은 것은 지역주의를 부추긴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언론 개혁〓이 후보는 “언론은 기업적 측면과 언론 본연의 임무를 담당하는 측면이 있다. 세무조사가 언론의 본래 기능을 간섭하거나 위축시켜서는 안된다. 언론자유는 민주주의의 기본이며 언론 탄압은 독재 아니면 공산주의이다”고 언론관을 밝혔다.

노 후보는 “대통령이 되더라도 특정 언론사와의 인터뷰를 거부할 것이냐”는 물음에 “언론이 부당하게 공격하는데 굴종해서는 안된다. 왜곡된 사실을 갖고 근거없이 국민의 정부나 특정 정치인을 공격하면 그 박해에 나설 권리가 있다. 다만 대통령이 되어서도 맞서야 하느냐 하는 점에 대해서는 나도 생각하고 있다”고 대답했다.

▽정체성 논란〓이 후보는 “노 후보는 95년 DJ가 국민회의를 만들 때 반역사적 행위, 야바위 행위라고 비난했다. 또 새정치국민회의를 ‘헌정치반복회의’라고 비난했다. DJP연합을 3당 합당에 비유하기도 해놓고 97년 대선 직전 합류했는데 그것은 정체성 있는 행동이냐”고 노 후보를 공격했다.

이에 노 후보는 “한국의 야당은 갈라졌다 합쳤다를 계속했다. 그러나 누구도 야당의 틀 속에서 이합집산한 것을 정통성 훼손이라고 말하지는 않는다”고 반박했다.

이 후보가 “국민회의를 만들지 않거나 DJP연합 안했으면 정권 교체가 가능했겠느냐”고 계속 추궁하자 노 후보는 “좋다. 3당 합당과 국민회의는 차원이 다르다”고 물러섰다. 또 이 후보가 “3당 합당의 주역인 김영삼(金泳三) 전 대통령에게 제스처를 보내는 것은 어떻게 생각해야 하나”라고 묻자 노 후보는 “역사성을 복원해야 하기에…”라고 답했다.

전주〓정용관기자 yongari@donga.com

부형권기자 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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